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서인의 과격파로서 활약하였다. 1682년 기패관(旗牌官) 이회(李회)·한수만(韓壽萬) 등과 함께 남인을 모함하였다.
즉, 이들은 김석주(金錫胄)·김익훈(金益勳) 등의 사주를 받아 허새(許璽)·허영(許瑛)·이덕주(李德周) 등 남인들이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허새·허영은 사형당하고, 민암(閔黯)·권대운(權大運) 등 남인계열의 다수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 또는 유배되었다.
이 공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문신 정2품의 품계 이름)에 올랐으나, 뒤에 무고임이 밝혀져 1689년 남인이 기사환국으로 권력을 얻은 후에 참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