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도승지, 개성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9년 부모가 연로하여 지방에 나가 봉양하고자 양산군수를 자원하였다. 1521년 다시 중앙에 돌아와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고, 지평(持平)을 거쳐 이듬해 필선(弼善)이 되었으며, 그 뒤 집의(執義) · 전한(典翰)을 역임하였다.
1524년 평안도경차관(平安道敬差官)으로 파견되어 허공교(虛空橋)에서 야인에게 패한 이함(李菡) · 한규(韓珪) 등의 죄상을 추국(推鞫)하고 이들을 각각 웅천(熊川)과 순천에 유배하도록 하였다.
1525년 좌부승지가 되고, 이듬해 여주목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1529년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530년에 도승지 · 이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1532년 개성유수를 지냈다. 성품이 순수하고 신중하며 곧아 행동에 교만하거나 꾸밈이 없었고 과묵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모재집(慕齋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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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홍치14년신유2월○일생원진사방(弘治十四年辛酉二月○日生員進士榜)』(사마방목(司馬榜目)[보물 제1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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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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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평안도 경차관 활동 : 『중종실록』 50권, 1524년(중종 19) 4월 21일. "평안도 경차관 김안정이 야인 쫓을 때의 군마의 사상자 수를 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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