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선술(善述)
경현옹(警絃翁), 경옹(警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4년(선조 17)
사망 연도
1666년(현종 7)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동지중추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선술(善述), 호는 경현옹(警絃翁) 또는 경옹(警翁). 김려(金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언침(金彦沈)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근(金瑾)이며, 어머니는 의정부도사 김복흥(金復興)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4년(인조 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장령 등을 지냈다. 1623년 장령으로 있을 때 함경감사 목장흠(睦長欽)의 인목대비 폐모절목(廢母節目) 작성문제를 변명하다가 흥해군수(興海郡守)로 교체되었다.

1634년에는 광해군 때 폐모 정청(庭請: 국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의견서를 올린 뒤 국왕 전교를 기다리는 것)에 참여하였던 문제로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양해를 받았다. 그 뒤 1652년(효종 3) 정평부사(定平府使)로 있을 때에 영흥부사(永興府使) 김소(金素), 북청판관(北靑判官) 김이경(金以鏡), 경성판관(鏡城判官) 이성시(李聖時) 등과 함께 군사무기의 수리에 따른 직무태만으로 병조의 탄핵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