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북평사, 서장관, 형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광해군 말년 정치의 문란으로 반정을 도모한 김류(金鎏)·이귀(李貴)로부터 가담할 것을 종용받자, “이미 광해군의 녹을 먹었으니 어찌 가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하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유현(遺賢)으로 천거되어 부제학을 제수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아들에게도 묘비에는 양주목사라고 쓸 것을 명하는 절개를 보였다. 학문에 힘썼으며 시문을 좋아하여 낙향하여서는 백마강가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동지(同志)와 더불어 글과 술로 소일하였으며, 스스로를 강상풍월주인(江上風月主人)이라 칭하였다.
당시의 거유 김장생(金長生)·신흠(申欽)·황신(黃愼)·서성(徐渻)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수북정집(水北亭集)』이 있었으나 화재로 거의 소실되고 낙본만 전한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매산집(梅山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