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조참판·규장각직제학·홍문관부제학·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841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대사헌·한성부판윤 및 공조·호조·예조의 판서와 규장각제학·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846년에 좌참찬이 되었다.
1848년에 다시 예조판서를 거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안동김씨의 권세를 믿고 방자한 행동을 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전라남도 광양현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여 다시 안동김씨의 세도가 확립되자, 유배에서 풀려나 한성부판윤으로 등용되었다.
이어 이조판서를 거쳐 1851년(철종 2)에 좌의정에 오르고 『헌종실록(憲宗實錄)』 편찬 총재관(摠裁官)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영의정이 되었다. 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1862년에 이정청총재관(釐整廳摠裁官)이 되었고, 1864년(고종 1)에 『철종실록(哲宗實錄)』 편찬 때 지실록사(知實錄事)가 되었다. 이듬해 영돈녕부사로서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기년편고(紀年便攷)』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