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성(錦城). 삼한공신 대광(大匡) 나총례(羅聰禮)의 9대손이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나유(羅裕)의 아버지이다.
최우(崔瑀)가 선지사용별감(宣旨使用別監)으로 삼아 지방에 파견하였는데, 이때 주구(誅求)가 심하여 백성이 괴롭게 여겼다.
그 뒤 최항(崔沆)에게 아첨하여 장흥부사(長興副使)가 되었다가 전라안찰사가 되었다. 1260년(원종 1) 정월에 장물죄로 파면당한 송소(宋紹)를 대신하여 제주부사(濟州副使)가 되었는데, 현지에 이르자 사람들이 “제주는 옛적에는 작은 도적을 겪었는데 지금은 큰 도적을 만났다.”고 하였다.
그 다음달 경자(庚子)에 제주부사·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서 방호사(防護使)를 겸하였는데, 이는 제주가 바다 가운데 큰 진(鎭)으로 송상(宋商)과 왜(倭)의 내왕이 잦아지므로 유사시에 대비하여 취해진 것이다. 1263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으며, 관직이 형부상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