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대년(大年), 호는 구봉(九峯) · 구화(九華) · 기지(耆之). 할아버지는 첨추(僉樞) 나율(羅慄)이며, 아버지는 나덕용(羅德用)이며, 어머니는 송정순(宋廷筍)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학유(學諭) · 학록(學錄) · 학정(學正)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이이첨(李爾瞻)이 유생 이위경(李偉卿)을 시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대비 지위를 폐하자는 소를 올리자, 한림(翰林) 엄성(嚴惺)과 함께 이위경을 탄핵하였다. 이때 양사(兩司: 사간원 · 사헌부)의 반발로 말미암아 관직을 삭탈당하고 향리인 담양으로 돌아갔다. 3년 뒤 복직되어 감찰을 지냈으나, 다시 파직되었다.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담양의 구산사(龜山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