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양좌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종친부전부, 삭녕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현도(顯道)
명촌(明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8년(인조 16)
사망 연도
1710년(숙종 36)
본관
안정(安定)
주요 관직
장령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종친부전부, 삭녕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현도(顯道), 호는 명촌(明村). 할아버지는 나만갑(羅萬甲)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나성두(羅星斗)이며, 어머니는 판서 김남중(金南重)의 딸이다. 나석좌(羅碩佐)의 형이다.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수양에만 전념하였다.

송준길(宋浚吉)의 추천으로 희릉참봉(禧陵參奉)·동몽교관·상의원주부의 벼슬을 받았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683년(숙종 9) 평강현감을 잠시 지내었으나 그만두었다. 1685년 공조좌랑·충청도도사·종친부전부·삭녕군수 등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사퇴하였다.

1687년 스승 윤선거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려고 상소했다가 영변에 유배되었으나 이듬해에 풀려났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김수항(金壽恒)과 이사명(李師命)이 극형으로 죽자 혼자서 천리길을 달려가 이사명의 상을 치르고 돌아오니 모두들 의협심에 감탄하였다. 1706년 처음으로 장령을 지냈다. 저서로는 『명촌잡록(明村雜錄)』이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명재유고(明齋遺稿)』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