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홍암(泓菴). 평안남도 평양 출신.
19세에 동학에 가담하여 1894년 나용환(羅龍煥)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뒤 천도교 도사(道師)로서 15년간 포교와 민중교화운동에 힘썼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하여,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운동 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이 달 27일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의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날인하였다.
3월 1일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태화관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뒤에는 천도교 도사로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