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협 ()

나인협
나인협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를 역임하며 민중교화운동에 힘쓴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이칭
홍암(泓菴)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2년(고종 9)
사망 연도
1951년
본관
나주(羅州)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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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를 역임하며 민중교화운동에 힘쓴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홍암(泓菴). 평안남도 평양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세에 동학에 가담하여 1894년 나용환(羅龍煥)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뒤 천도교 도사(道師)로서 15년간 포교와 민중교화운동에 힘썼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하여,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운동 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이 달 27일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의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날인하였다.

3월 1일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태화관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뒤에는 천도교 도사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삼·일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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