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797년(정조 21)나주 유림의 발의와 각 향교의 협찬으로 배현경(裵玄慶)을 주벽으로 배정지(裵廷芝)ㆍ배극렴(裵克濂)을 배향하면서 무열사로 건립했다.
1868년(고종 5) 헐린 뒤 유허비(遺墟碑)를 세웠고, 1882년(고종 19) 복건하여 배운룡(裵雲龍)ㆍ배공서(裵工瑞)ㆍ배공보(裵工甫)ㆍ배승무(裵承武)ㆍ배세조(裵世祚) 등 5위를 추배하였다. 1983년 강당을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신실인 사우를 비롯하여 내삼문ㆍ강당ㆍ외삼문ㆍ무열사유허비와 무열사중건사적비가 있다.
배현경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배운룡은 현경의 현손으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연성군(連城君)으로 봉해졌다. 달성군의 8세손인 배정지는 밀직부사를 지냈다.
배극렴은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1378년 삼도원수로 재임시 진주·경산 등지에서 왜구를 대파하였고 조선 개국공신(1등)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달성군의 11세손인 배공서는 고려말에 예부상서를 지냈으나 조선 개국시에 은둔하였다.
배공보는 달성군의 11세손으로 14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직제학을 지냈다. 배승무는 광주(光州)에서 출생하여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유재란시 고종후(高從厚)ㆍ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진주성에서 순절하였다. 배세조는 나주에서 태어나 후진교육과 향풍교화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