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음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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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도경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6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기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낙음선생문집 미디어 정보

낙음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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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도경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6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6권 2책. 목판본. 1864년(고종 1) 후손 필보(必普)의 편집을 거쳐 비로소 목판이 완성되었고, 1906년 9대손 은호(殷浩)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과 권말에 이동급(李東汲)·은호의 발문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

권1·2는 시·사(詞), 권3은 서(書)·제문·잡저, 권4∼6은 부록으로 연보·가장·행장·묘지·묘갈명·병암서원봉안문(屛巖書院奉安文)·만사·사우서독(師友書牘)·황강연조도명첩(黃岡延詔圖名帖) 등이 실려 있다.

시에는 정루(亭樓)를 읊은 것과 차운(次韻)이 많으며, 스승인 정구(鄭逑)·서사원(徐思遠)과 배상호(裵尙虎)·이간(李幹) 등 학문적으로 유명한 인사에 대한 만사가 들어 있다.

잡저의 「재은율시장선설(在殷栗時裝船說)」은 1630년(인조 8) 가도(椵島)에서 유흥치(劉興治)가 진계성(陳繼盛) 등을 죽이자 조정에서는 수군·육군을 동원하여 가도를 토벌하게 했는데, 당시 장선차사(裝船差使)로 전선을 감독해 유흥치를 토벌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보병영문(報兵營文)」은 가도를 토벌하려고 장선할 때, 어선을 전선(戰船)으로 사용해서는 적을 대적할 수 없으므로 새로 수선해야 한다는 세 가지 조항을 병영에 보고한 것이다.

「설진석도시품순영문(設鎭席島時禀巡營文)」은 석도에 진을 설치할 때 순영에 상신한 글이다. 성을 쌓기에 앞서 목책(木柵)을 설치하자는 것과 성을 쌓는 데 소요되는 모민(募民)·석수장(石手匠)·목수 등 20개 품목을 각 현에 배정하자는 내용이다. 「보순영청파석도이진초도문(報巡營請罷席島移鎭椒島文)」은 석도에는 식수가 부족하므로 진을 설치하는 일을 멈추고 초도(椒島)로 옮기자고 순영(巡營)에 보고한 글이다.

「황강연조도명첩」은 당시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그림 두 장과 23인의 원접사(遠接使) 명단이 들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문집은 가도 사건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연구에도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 - 『입재집(立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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