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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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단학파에 속한 도교인.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620년(광해군 1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26년(중종 21)
  • 출생지전라북도 함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주환 (전 서울대학교, 중문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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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단학파에 속한 도교인.

개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함열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555년(명종 10)에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임피(臨陂)에서 살다가 애첩과 당질간의 간통사건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중이 되었다.

법명을 총지(摠持)라 하고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서 은거하였다. ≪해동이적 海東異蹟≫에 의하면 후에 경상도 의령의 한 암자에서 지낼 때 부주(符呪) · 상위(象緯) · 감여(堪輿) · 추점(推占) 등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을 무주 부근에서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먼저 정신통일을 하기 위하여 잠 안 자는 법을 익히고, 다음 벽곡(辟穀 : 곡기를 끊음.)하면서 ≪참동계 參同契≫와 ≪황정경 黃庭經≫의 묘리를 터득하였고, 이를 운용하여 내단수련(內丹修鍊 : 호흡법 등으로 장수를 누리려는 도교 수련법의 일종)의 극치인 신태(神胎) 일보 직전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芝峯類說≫에 따르면 그의 나이가 90살이 되었어도 거의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대천을 떠돌아다녀 사람들은 그를 지선(地仙)이라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

  • - 『해동이적(海東異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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