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진주목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게문집』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고성(固城)과 임실(任實)의 군수를 역임하면서 고을 수령으로 저질러서는 안될 일들을 모아 「거관불망기(居官不忘記)」를 지어 자신과 후임 관리들을 훈계하였다. 백성의 부세를 경감하고 농사를 권장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66년(현종 7) 진주목사(晉州牧使)가 되었으나 예제(禮制)의 개혁을 상언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당해 파직되었다.
그 뒤 이계정사(伊溪精舍)를 지어서 후진을 교육하였다. 특히, 사학(史學)에 밝아 국조 이후 당시까지 역사적인 사실을 「동국통감부(東國通鑑賦)」와 「동국소승(東國小乘)」을 지어서 밝히고, 「기해예송전말(己亥禮訟顚末)」을 지어 숙종 초에 있었던 예론 시비의 근원을 밝혔다.
죽은 뒤 9년 만에 예제가 자기의 주장대로 고쳐지자 손자 남윤주(南胤胄)가 상언하여 복관되었다. 저서로는 『이계문집(伊溪文集)』 10권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이계문집(伊溪文集)』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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