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허리 부분에서 반으로 잘라진 것을 접합하여 복원한 것이며 무릎 아래 부분은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었다. 계란 형태의 타원형 얼굴은 살이 올라 풍만하지만 마멸이 심해 이목구비가 불분명하고 좁은 콧날과 두툼한 입의 윤곽만이 확인된다. 머리는 뚜렷한 나발(螺髮)에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목에는 한 줄 음각선으로 삼도(三道)를 표현하였다. 신체는 어깨가 좁아 위축된 모습에 볼륨이 약화되어 신체 윤곽이 불분명하며, 측면관에서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목에서 흘러내린 옷깃은 상체를 따라 곧게 드리워져 밋밋한 상체를 완전히 드러내었다.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모이는 쐐기형의 3줄 옷주름이 두드러지며, 가슴 위로 폭이 넓은 내의(內衣)의 끝자락이 비스듬히 노출되었다. 수평으로 군의(裙衣)를 묶은 두 가닥의 허리띠와 나비 리본 형태의 띠매듭이 인상적이며, 양 손목을 감싸고 드리워진 옷자락은 양다리의 윤곽을 의도하면서 다리 사이로 모이는 층단식 옷주름으로 주름져 있다.
수인은 시무외(施無畏) · 여원인(與願印)의 통인(通印)으로 곧추 세운 오른손은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불분명한 하지만, 아래로 곧게 내린 왼손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서로 구부려 맞댄 특이한 형식이어서 주목된다.
신체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표현된 동안(童顔)의 얼굴과 어색한 신체 비례, 볼륨이 약화된 신체 조형성, 특이한 여원인의 수인 등에서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