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
개설
내용 및 특징
우전왕 형식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님이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불상을 최초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최초의 불상을 우전왕식이라고 한다.
우전왕식 법의는 720년에 조성된 경주 감산사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 8세기 전반기 경으로 추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경주 사암제 여래 입상과 경주 굴불사지 석조 사면불상 남면 불입상 등에서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감산사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과 국립경주박물관 사암제 여래 입상의 밑단은 W자형을 이루고 있어 V자형을 이루고 있는 이 불상과 차이를 보인다. 양 무릎에서 Y자형을 이루며, 밑단이 V자형을 이루는 것은 굴불사지 석조 사면불상 남면 불입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곧게 펴 내린 특이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하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맺고 있는 수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왼쪽 윗부분이 떨어져나간 주형(舟形)의 광배는 조각이 선명하지 않으나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가 돌려져 있다.
대좌는 자연암반을 이용하였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윗면을 둥글게 다듬어 양발을 양각하였다. 전신에 양감이 뚜렷하고, 당당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와 형식화되지 않은 법의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조각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거창군지(居昌郡誌)』(거창군지편찬위원회, 1979)
- 「거창군농산리(居昌郡農山里) 및 상천리(上川里)의 석조불상(石造佛像)」(정영호, 『고고미술(考古美術)』34, 1966)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