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문보(文甫), 호는 의재(宜齋). 할아버지는 남공보(南公輔)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 남인구(南麟耉)이며, 어머니는 윤상후(尹商厚)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 세마·호조좌랑·감찰을 거쳐 함양·무주·남원·임천 등의 수령을 역임하며 주로 외직을 맡아 치적을 남겼다. 특히 1808년(순조 8) 함양군수 재직시 암행어사에 의하여 치적이 보고되어 승서(陞敍)되고 이듬해 남원현감이 되어서는 진휼에 힘쓴 공으로 표창을 받았다.
1814년 정시 문과의 병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사헌부·홍문관·규장각·세자시강원 등을 거치며 검토관·선교관 등으로도 활약하였고, 1819년 통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형조참의에 임명되고 승지를 거쳐 춘천부사를 끝으로 사직하였다. 문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의재집(宜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