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1동. 11,701㎡. 약 300년 전에 남평문씨인 문재철(文在徹, 監正公)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성당동 부근에 입향(入鄕), 정착하였다.
그리고 그의 5대손 문달규(文達奎)가 이곳으로 분가(分家), 정주(定住)하였다. 이곳은 남평문씨가 누대에 세거(世居)해온 전형적인 동성촌락(同姓村落)이다.
이 마을은 조선 말기의 양반가옥 9동과 별당(別堂)양식의 정자 2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들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나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가옥의 정미(精微)한 고졸미(古拙美)를 갖추고 있다.
특히 계획된 도로망과 격조 높은 흙담이 건물을 에워싸면서 주위의 산야(山野)와도 잘 조화되고 있으며, 당내친(堂內親)인 대소가(大小家)가 큰집의 앞과 좌우에 새집을 지어 분가한 건물 배치는 매우 이채롭다.
본래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75년 12월 30일 대구광역시 지방지정문화재 민속자료로 변경되었다가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로 다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