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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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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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육조(六曹)에 설치한 각 사(司)의 실무책임을 맡은 정랑(正郎)과 좌랑(佐郎)의 통칭.
이칭
이칭
조랑(曹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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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육조(六曹)에 설치한 각 사(司)의 실무책임을 맡은 정랑(正郎)과 좌랑(佐郎)의 통칭.
내용

육조에는 각각 3, 4개의 속사(屬司 : 하급의 관서)를 설치하고 그 실무를 책임맡은 정5품직 정랑과 그를 보좌하는 정6품직 좌랑을 두었는데, 이들을 합칭하여 낭관 또는 조랑(曹郎)이라 하였다.

그 수는 병조·형조에 정랑·좌랑 각 4인, 그밖에는 모두 각 3인씩 두었다. 또 이조와 병조를 전조(銓曹)라 함에 따라 이조·병조의 낭관을 전랑(銓郎)이라 하였다.

특히, 이조·병조의 문·무선사(文武選司) 낭관은 고관회의에서 관리를 선발할 때 실무관으로 배석하여 피천자(被薦者 : 낭관으로 추천된 자)의 명단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이 때 낭관이 불만이 있을 경우 추천되어 올린 명단에 기록하지 않는 권한이 있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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