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최경회(崔慶會)와 문홍헌(文弘獻), 그리고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해남에서 전사한 조현(曺顯) 등 능주 출신 세 사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685년(숙종 11)능주향교의 유림들이 세운 3동의 정려건물이다.
좌측 건물이 최경회, 가운데가 조현, 우측이 문홍헌의 정려인데, 그 구조양식은 모두 동일하여 정면 1칸, 측면 1칸의 간단한 양식이고, 도로에서 4m 정도 높은 암벽위에 나란히 서있다.
최경회(1532∼1593)의 본관은 해주(海州), 능주 출신으로 자는 선우(善愚), 호는 삼계(三溪), 또는 일휴당(日休堂)이다. 1567년(선조1)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영해군수 등을 지낸 뒤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의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분전하다가 순국하였다. 후일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영조 때 충의(忠毅)의 시호가 내려졌다.
문홍헌(1539∼1593)의 본관은 남평(南坪), 역시 능주에서 출생하였고, 자는 여징(汝徵), 호는 경암(敬庵)이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을 따라 금산싸움에 참가하였고 뒤에 최경회의 막하로서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조현(?∼1555)의 본관은 창녕(昌寧), 화순군 춘양 출신으로 자는 희경(希慶), 호는 월헌(月軒)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555년(명종 10)의 을묘왜변 때 가리포첨절제사로서 영암에 침입한 왜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후일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