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태조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능주의 서쪽에 창건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1600년에 현령 하응도(河應圖)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611년 현령 윤수(尹燧)가 동무(東廡) · 서무(西廡)를 중건하고 1724년에 중수하였으며, 1775년에 목사 이광도(李廣度)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중수하였다.
1921년에는 동무를 중건하고 1923년에 명륜당과 서무를 보수하는 한편, 동재와 서재를 신축하였으며, 그뒤로도 수차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재 · 서재 · 동무 · 서무 · 향사당(鄕射堂) · 노반청(奴班廳) · 홍살문 등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의 내부는 통문으로, 우물마루로 깔려있다. 대성전의 처마는 전면은 겹처마로, 후면은 홑처마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무 · 서무의 전면은 툇간을 두었고, 3량가의 납도리집이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조는 3량가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된 사마재는 중앙에 마루 2칸 양옆으로 방을 각각 1칸씩 두었고 양쪽으로 날개를 달아 부엌으로 사용했고, 정면과 후면에는 마루를 달았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명륜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명륜당을 세우고 뒤쪽에 대성전을 세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재단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1855년(철종 6) 이후에 재임한 역대 임원들의 기록이 잘 보관되어 있는데, 《능주향교유안 綾州鄕校儒案》 · 《사마재유사안 司馬齋有司案》 · 《양사재집강안 養士齋集綱案》 등의 안류(案類)와 《육영재절목 育英齋節目》 · 《능주목유생흥학절목 綾州牧儒生興學節目》 등 절목류의 기록이 10여권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