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 능성 구씨(綾城具氏)의 4대손인 예(藝)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면서 가문의 원찰(願刹)로 창건하였다고 하는 사찰로서, 그 때 주존불(主尊佛)로 봉안한 것이 바로 이 금동불상이라고 전한다. 부근의 14세기 전반기 작품인 장곡사(長谷寺)나 문수사(文殊寺)의 금동불상과 같은 유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불상의 형태는 문수사 불상보다는 장곡사 불상에 가깝지만, 장곡사 불상보다 더 당당하고 볼륨이 있다. 얼굴은 빚은 듯한 장곡사 불상의 얼굴보다 더욱 박력있고 양감이 풍부한데, 전체적으로 격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상체는 장대하면서 벌어진 어깨, 묵중한 아랫배, 당당한 가슴 등이 의젓하게 표현되었다. 하체는 넓고 당당한 모습인데, 무릎의 탄력적인 근육묘사로 얼굴이나 상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간략한 선조(線條)와 일정한 두께의 불의(佛衣) 역시 문수사 불상과 장곡사 불상과 비슷하다. 즉, 통견(通肩)을 입은 오른쪽 어깨의 반달 같은 대의(大衣)자락, 왼쪽 어깨의 초승달 모양의 옷깃 표현, 두 팔에서 내려오는 휘어져 내린 옷자락 등은 장곡사 불상의 의문(衣文)과 비슷하지만, 왼쪽 팔소매에서 옷자락이 무릎으로 내려온 점이 다소 다르다.
또한 왼쪽 팔의 Ω형의 주름, 승각기(僧脚岐), 나비형의 띠매듭, 치레 등도 14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후기(14세기) 충청도 지방에서 제작된 불상들과 같은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금동불상으로서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