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은 전하지 않고, 『고려사(高麗史)』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지어진 유래만 전한다.
유래는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는데, 기자는 여덟 조목의 가르침을 베풀어 예의를 숭상하는 풍속을 일으키니 조정과 민간에 일이 없었다. 백성들이 기뻐하여 대동강을 황하(黃河)에, 영명령(永明嶺)을 숭산(嵩山)에 각각 비유해서 임금의 덕을 칭송하고 안녕을 빌었다. 이 노래는 고려로 들어온 이후에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서는 임금을 송축하는 노래일 뿐이다. 이 노래의 바로 앞에 소개되어 있는 「서경(西京)」 역시 비슷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악장가사(樂章歌詞)』에 노랫말이 전하는 「서경별곡(西京別曲)」은 남녀간의 애정과 이별을 노래한 것으로, ‘서경’으로 시작되는 전반부와 ‘대동강’으로 시작되는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까닭으로, 「서경」·「대동강」의 유래와 「서경별곡」의 내용이 상당히 거리를 가지고 있으나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한 근거는 『고려사』를 편찬한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이 남녀간의 애정을 노래한 많은 작품들을 노랫말이 비속하다 하여 싣지 않거나 임의로 왜곡시켜 개작한 사례가 밝혀진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