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사동과 이웃한 당산동(唐山洞)에 무수한 고구려시대 고분들이 널려 있으나 대부분 도굴되고 돌무지무덤[積石塚]도 무너진 것들이 많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고분들이 조사되었으나 이미 다수가 도굴되었고 발굴보고를 남기지 않아 자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적은 돌무지무덤과 봉토분의 두 종류가 있는데, 봉토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2권)에 실린 사진과 도면이 유일한 것이다. 이 실측도에 의하면, 고분은 석실봉토분으로 돌방의 장축은 약간 서쪽으로 향한 남북 방향이며, 남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데 다른 고분에 비해 짧은 것이 특색이다.
널방[玄室]은 남북길이가 약간 길어 2.72m이고 동서길이는 2.18m이며 바닥에 널받침[棺臺]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천장은 벽과 나란하게 3단에 걸쳐 죄어가다가 그 위에 모줄임[抹角藻井]으로 마무리하였다. 벽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