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와 시호·가계 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당시의 내치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당나라와 일본과의 외치에 관한 기록만이 있다.
일본에는 전대의 현석(玄錫) 때도 다녀왔던 문적원감(文籍院監) 배정(裵頲)을 894년에 파견하였으며, 905년 당나라에 오소도(烏炤度)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한동안 대위해는 발해왕계에서 빠져 있었으나, 김육불(金毓黻)의 노력에 의하여 『당회요(唐會要)』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어 발해의 제14대왕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