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浮山) 기슭 백마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1700년(숙종 26)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이경여(李敬輿)가 낙향하여 거처하던 곳에 그의 손자 이명(頤命)이 정자를 세웠다.
이경여가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보복하고자 효종에게 북벌계획과 관계되는 상소를 올렸는데, 비답(批答)에 “성이지통재심 유일모도원의(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意)”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송시열(宋時烈)이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日暮途遠)”이라는 여덟 글자를 이경여의 아들 민서(敏敍)에게 전한 것을, 민서의 아들 이명이 돌에 새기고 이 누각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