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문왕의 재위 기간인 737∼793년간 사용하였다. 그런데 문왕 때의 연호 사용에 관하여는 약간의 의문이 남아 있다.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의 육정산고분(六頂山古墳)에서 발견된 ‘정혜공주묘지(貞惠公主墓誌)’에 의하면, 문왕은 ‘보력(寶曆)’이라는 연호를 잠시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왕 말기 다시 대흥의 연호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이 시기에도 일세일원의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