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광덕리 석조 보살 입상

  • 예술·체육
  • 작품
  • 국가문화유산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이칭
  • 이칭금릉 광덕동 석조보살입상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성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미디어 정보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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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내용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02m.감문면에는 속칭 숫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 저수지의 뚝 밑에 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하단부가 흙 속에 묻혀 있었으나 현재 발굴되어 연꽃대좌에 서 있는 불상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아직도 조각이 선명한 수작(秀作)이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따로 얕게 부조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장식이 화려한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이 관에는 삼산형(三山形)으로 구슬을 단듯한 둥근 원을 양각한 무늬가 새겨졌고 관대가 길며 수식(垂飾)의 일부인 돌기가 양측면에 표현되었다. 이러한 점은 10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한송사지 및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높은 관 형식과 상통하는 특징이다.

눈은 반쯤 뜨고 있으며 눈꼬리가 길고 눈의 위·아래에 선이 깊이 패어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의 눈과 유사하다. 코와 입은 잘 정돈된 단아한 표정을 이루며 귀 역시 손상을 입지 않아 길게 남아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졌고 천의는 여래의 통견의(通肩衣)와 같은 형식으로 양어깨에 걸쳤다. 마애조각이어서 여건이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주름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커다란 연꽃을 든 손과 손가락도 사실적으로 조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보살상의 착의법(着衣法)과 긴 대가 달린 관의 형식, 둥근 어깨 등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 초기 10세기 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글 최성은, 사진 안장헌, 한길사, 2003)

  • - 『문화재대관』5 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대학당,1986)

  • -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등장과 전개」 - 청담사지 자씨각 보살상을 중심으로 -(정성권, 『동악미술사학』 22, 동악미술사학회, 2017)

  • - 「금릉광덕동마애보살입상」(정영호,『고고미술』99, 한국미술사학회,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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