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는 단기유동성 부족 등이 원인이 되어 국내에 유입된 외화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됨으로 인해 대외 거래에 필요한 외환이 부족하게 되어 맞게 되는 국가적 경제 위기이다. 1997년 무렵에 나타난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는 은행의 도산과 금융시장이 불확실해지면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였으나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약칭 IMF)과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외환위기는 1990년대 들어와서 각 국가별로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면서 국제자본이동의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단기적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시장에서 환율과 수익률이 급격히 변동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11월에 투기적 외화자본이동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미국달러표시 원화의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국제결제통화인 미국달러가 품귀해지는 외환위기가 나타났다.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완화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오는데 특히 단기적인 투기적 자본(hot money)의 급격한 유출입은 환율과 국제수지를 교란시키게 된다.
이러한 환율의 급격한 변화는 무역업체나 외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불확실성과 위험을 증가시키면서 금융과 자본시장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또한 금융과 자본시장의 마비는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실물경제도 대폭적으로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외환위기는 은행의 도산과 그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를 가져오는 금융위기와 동반적으로 나타나는데 1997년대 아시아 외환위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들 국가에서 거시경제지표가 아주 건전하였으며 경제성장률과 투자수익률도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는데 있다.
다만, 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이 축적되지 못한 채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원자재와 자본재를 수입하면서 구조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가져오는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 첫 번째는 1994년 남미의 외환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는 제1세대 위기모형이다. 재정적자로 인한 국내통화팽창은 국매물가를 상승시키고, 외환시장에서 국내통화의 환율이 상승하면서 시장환율이 정부가 유지하려는 환율 수준보다 훨씬 높게 형성될 때 투기자들이 이 환율차이를 이용하여 투기적 이익을 보기 위해 국내통화를 팔고 미국달러를 수요하면서 국제유동성이 부족하게 되고 국내통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나타나는 위기이다.
둘째는 1990년대 초반 유럽의 위기를 설명하는 제2세대 위기모형이다. 이는 선진국들의 외환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투기자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예측으로 향후 국내통화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만으로 실제 시장에서 국내통화를 팔고 미국달러를 가수요(speculative demand)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내통화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자기실현적인 위기모형이다.
외환위기를 설명하는 셋째 모형은 1997년에 나타난 아시아 외환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모형이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대수익과 위험인데 아시아의 각국 정부는 기업의 파산가능성에 대해 암묵적인 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은행이나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위험을 낮게 평가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기대수익만 높은 기업에 과도하게 중복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의 자산가치는 급격하게 높아졌다. 하지만 위기로 인해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기업에 과도하고 중복적으로 투자한 은행과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은행이 도산하고 자본시장이 부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은행부실과 자본시장의 취약한 구조로 인해 자본거래가 어렵게 되면서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금융위기가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자하여 은행도산을 막게 된다. 하지만, 이때 풀려진 국내 유동성 증가는 다시 국내통화 가치의 하락을 가져오면서 단기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가져오고 결국 외환위기가 금융위기와 중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설명하는 또 다른 모형으로 금융공황모형이 있다. 이는 국제자본시장에서 아시아 국가의 은행들이 자본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제금리보다 비싸고 단기적인 자본을 차입하고 이를 국내에 들여와서 국내기업들에게 장기로 빌려주면서 채권과 채무의 만기가 서로 다르게 되고 자본흐름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위기모형이다.
시장교란으로 위험이 높아지면 국제자본시장은 아시아 국가의 은행들에게 빌려준 단기 차입자본을 더 이상 빌려주지 못하고 그 자본의 상환을 요구하게 되는데, 국내 은행은 장기로 빌려준 자본을 단기적으로 회수할 수 없게 되면서 상환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은행은 도산하고 자본시장이 취약하게 되면서 자본거래가 불가능해지고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금융위기가 나타났다. 또한 단기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나타나면서 외환위기가 금융위기와 중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외환위기는 몇 가지 특징적인 투자행태를 보이게 되는데 먼저 자기실현적 투자행태를 들 수 있다. 즉, 외환위기가 각국의 경제기초(fundamentals)와 관계없이 자기실현적 비관론에 의해 단기 투자자들이 자본을 회수할 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경제기초에서 나타내고 있는 적정 환율수준과 시장 환율수준의 심각한 괴리가 나타날 때 외환위기가 쉽게 발생 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외환시장은 작고 소외된 시장이어서 보통 국제외환시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수 정보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의 투자행태를 따라하는 패거리 행태(herding behavior)를 보이게 된다.
외환위기의 마지막 특징으로는 외환위기가 인접국가로 빠르게 전염되는 전염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접국들끼리 무역과 자본시장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어느 한 나라의 위기는 인접국의 경제에 바로 영향 을 미치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 · 말레이시아 · 태국 · 필리핀 ·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5개국의 경우 1996년에 총 930억 달러에 달하던 민간부분의 자본유입이 1997년에는 오히려 121억 달러의 민간자본유출로 바뀌면서 1년 만에 그 변동 폭이 무려 1,051달러에 이르렀다. 특히 상업은행들에 의한 자본이동은 555억 달러의 자본유입에서 213억 달러의 자본유출로 전환되면서 768억 달러의 변동 폭을 기록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자본이동의 변화는 이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기초 여건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외신인도 하락과 자기실현적 위기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 자본이동은 급격하게 아시아 국가로부터 이탈하면서 외환위기는 강력한 전염효과를 보이면서 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로 인해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겪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부는 1980년대 이후 자본이동에 대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1990년대 들어서 조심스럽게 시장의 개방 폭을 증가시켰다. 1990년대 우리나라 물가는 약 4∼7%정도로 안정되었고 경제성장률도 연 평균 7.5%에 달하였다. 하지만 경상수지는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였고 1996년에는 적자폭이 크게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자본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국제수지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였으며 외환보유고도 증가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1997년 들어서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우성과 삼미가 도산하는 등 재벌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에서도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뢰도(market confidence)가 점차 상실되어 갔다. 따라서 해외 투자자들이 원화를 기피하고 국제결제통화인 미국달러를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원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더니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95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매도하였다.
그러나 곧 진로, 건영, 대농, 한신공영 등 대기업이 퇴출되었고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인접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불안정한 시장조짐이 나타났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에 이어서 필리핀 페소의 폭락 등이 나타나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외환위기가 확산되었고 한국의 경우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였으나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결국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결국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각각 70억 달러와 37억 달러를 지원받아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외환위기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의미는 그것이 그 나라의 대외신인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경우 국내통화 환율이 급격히 변동하면 이는 시장교란이 노출되면서 정상적으로 환율이 반영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후진국의 경우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경제적인 문제가 노출된 것처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단기적 투기적인 자본이 급격히 유출하기 시작하고 곧 외환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국제투자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환율변동에 대해 이중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기초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대외신뢰도의 변화로 단기적인 자본이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이중적 시장기준은 후진국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정확하고 회계기준이 다르고,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정보가 불확실하면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이행을 약속한 긴축재정, 금융 및 은행부문의 건전성 제고, 자유변동환율제도 채택, 산업구조와 기업지배구조의 개혁, 전면적인 자본자유화 조치 등 일련의 정책시행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우선 단기성 고금리 차입금인 보완준비금융(SRF) 135억 달러를 1999년 9월에 조기 상환하였고, 60억 달러의 대기성차관자금(SBL)을 2001년 1월부터 상환하기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8월 23일 1억 4,000만 달러를 최종 상환하였다.
이로써 2004년 5월까지 갚도록 예정되어 있던 국제통화기금 차입금 전액인 195억 달러를 조기에 상환하였는데, 이는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3년 8개월 만이며, 당초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국가채무를 정리한 것이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금융시장의 전면적인 개혁을 통해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2001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받은 구제 금융을 모두 상환할 수 있었으며 외환위기를 극복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