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년(숙종 21) 지방유림의 공의로 오두인(吳斗寅)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7년에 ‘德峰(덕봉)’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794년(정조 18) 강당을 중수하였다.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뒤 1979년 사우(祠宇)를 중건하고 1984년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6칸의 사우(祠宇), 10칸의 정의당(正義堂), 동재 · 서재 ·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內三門) · 홍살문[紅箭門]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오두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정의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된다. 매년 2월 중정(中丁)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6변(籩) 6두(豆)이다.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 및 유물은 《양곡집 陽谷集》 2권 4책과 1681년 김창협(金昌協)이 그린 오두인의 화상(畫像) 1점 등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5,000여평과 대지 3,000여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