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3m. 석탑은 극락전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 양식을 달리하는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단면이 네모난 석탑은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서 그 위에 탑신부(塔身部)와 상륜(相輪)을 겹겹이 올린 모습이다.바닥돌은 길고 큰 10장의 돌로 조립되었는데, 윗면에는 받침돌을 받치기 위해서 1단의 네모진 굄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은 네 귀퉁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서 그 사이의 각 면마다 길고 네모난 널돌을 여러 장씩 세워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면석을 조성하였다. 면석의 널돌은 북쪽면만 7장이고, 다른 면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남쪽면 가운데에는 네모나면서 위아래가 긴 문비(門扉)가 오목새김되어 있다. 받침돌의 덮개돌도 네 귀퉁이에 길고 넓으면서 얕은 돌을 놓은 뒤 그 사이를 각 면마다 3장의 돌로 채웠다. 윗면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평평하다.
탑신부는 3층으로, 각 층마다 10여 개의 크고 작은 돌을 쌓아 마치 모전석탑(模塼石塔)처럼 보인다. 곧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길고 네모난 돌을 3중으로 쌓아 만들었는데, 동쪽면은 15장의 돌로 이루어졌고, 남쪽면의 돌은 13장이다. 1층 몸돌 위의 지붕돌은 일반적인 석탑의 지붕인 지붕돌과 달라서 밑면의 받침이 없고, 윗면인 낙수면도 없으며, 전탑이나 모전석탑과 같이 윗면이 몇 단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각 층단은 받침돌의 덮개돌처럼 네 귀퉁이에 길고 큰 돌을 놓고, 그 사이를 몇 장의 크고 긴 돌로 결구(結構)하였는데, 위에는 2단의 층단이 있다. 이 2층 층단은 동쪽면의 위아래층이 4장의 돌로 구성된데 반해, 남쪽면은 아래층이 5장, 윗층이 4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2층 몸돌은 각 면마다 길고 큰 돌을 2중으로 겹쳐 조성하였는데, 동쪽면은 7장의 돌로 구성되었지만 남쪽면의 돌은 8장이다. 남쪽면에는 가운데 부분에 2짝의 문비를 새긴 널돌을 끼웠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 크고 긴 돌을 놓고 그 사이의 각 면을 길고 네모난 돌로 메웠는데, 동쪽면은 2장의 돌로 되어 있고, 남쪽면에는 3장의 작은 돌이 보인다. 2층 지붕돌 위의 층단은 3단이다. 3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지붕돌 밑면에는 네모난 1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인 낙수면에는 2단의 굄을 두고 상륜부를 올렸다. 머리장식인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돌기둥, 연꽃이 조각된 둥근 앙화(仰花)와 보주(寶珠)가 각각 놓여 있다.
이 석탑은 지붕돌 윗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고, 받침돌은 각 층마다 작은 돌을 겹쳐 결구하였다. 이러한 양식을 고려할 때, 이 석탑은 오히려 모전석탑 양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석탑을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고 일컫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건립 시기는 남쪽면 위아래에 조각된 문비 2짝의 양식과 상륜부의 조각, 각 부재를 다룬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