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때 병과권무(丙科權務)의 녹사(錄事) 2인과 이속(吏屬)으로 기사(記事) 2인을 두었고, 그 뒤 1309년(충선왕 1) 각염법의 시행으로 민부(民部)에 병합되었다.
설치시기와 그 기능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려 관제에 많은 영향을 준 당·송의 관제 가운데서 고려와 같은 명칭을 가지고 있는 송나라의 도염원을 통하여 그 대강을 살펴볼 수 있다.
송나라에서는 삼사(三司)의 부속기관으로서 경사(京師)에 설치되어 지방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거두어들이고 판매하는 전매기관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도염원은 송나라의 그것과 명칭은 같았지만 그 소속이나 기능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송나라의 도염원이 삼사의 부속기관이었는 데 비하여 고려의 도염원은 하나의 독립된 기관이었다. 그 기능에 있어서도 송나라의 도염원이 소금의 전매를 담당하였던 데 반하여, 고려의 도염원은 전매와는 관계없는 기관이었다. 충선왕대 이전 아직 소금의 전매제가 시행되지 않았으므로 도염원은 소금의 전매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각염법 시행 이전 독립관청으로 존재하여 전국의 염분(鹽盆 : 소금을 만들 때 쓰는 큰 가마)과 그로부터 거두어들인 염세(鹽稅)를 관장하던 기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충선왕 때 각염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염분이 민부에 소속되고, 민부가 소금의 전매를 담당하게 되자, 민부에 병합되어 사실상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