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주거지(敷石住居址)’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화덕자리·기둥구멍 등이 있어야 집터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돌깐집터의 범주에 넣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돌깐집터의 대표적인 예는 1936년에 조사, 보고된 평양시 청호리의 돌깐집터를 들 수 있다. 이 집터는 한 변이 6척 정도되는 사각형 범위 안에 화덕자리를 중심으로 편평한 돌이 깔려 있다. 시기는 신석기시대에 해당된다.
강원도 춘천시 북면 내평리에서 1971년소양강 선사유적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내평리집터는 동서 12.3m, 남북 4m의 범위 안에 돌을 깔았다. 돌이 깔린 면에는 화덕자리가 없고 오히려 돌 아래 맨바닥에서 화덕자리가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경상남도 진해시 웅천동자마산(子馬山)에서 1949년에 조사된 돌깐집터는 세로 4m, 가로 5m 크기의 사각형 구획 주변을 따라 넓적한 화강암을 평탄하게 깔고, 북쪽 모서리에 따로 길이 3m 정도의 범위로 돌을 깔아 돌출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화덕자리가 발견되지 않았고 바닥 전체에 돌이 깔려 있지는 않지만 구조로 보아 출입시설까지 갖춘 집터로 추정된다. 시기는 원삼국시대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이 3기의 돌깐집터는 움집을 위주로 하는 선사시대에 있어서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특히, 강원도 춘천시 북면 내평리의 경우는 일반적인 살림집이었다기보다는 특수한 용도에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