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사(中央日報社)가 겸영(兼營)한 민간상업방송의 하나로 동양방송 산하에는 동양라디오·동양텔레비전·동양FM 등이 있었다.
통상 TBC(TongYang Broadcasting Company)로 불렸다. 전반적인 방송 기본방침으로 ‘밝고 건강하고 감동적인 프로그램 제작, 빠르고 정확한 보도’를 내세웠다.
1964년 5월 9일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의 라디오 방송국으로 개국하였다. 1962년 12월 31일 호출부호 HLCZ, 주파수 1,380KHz, 출력 10㎾로 라디오 무선국 설치 가허가(假許可)를 받고, 1963년 6월 25일 동양라디오의 전신인 라디오서울방송주식회사(RSB)를 설립, 그 해 12월 24일 송신소를 준공하고 12월 28일 첫 시험전파를 발사하였다.
1964년 1월 6일서울 태평로1가에 연주소(演奏所)를 설치하였으며, 그 해 3월 12일 에는 호출부호를 HLCZ에서 HLKC로 변경, “라디오서울방송은 민간방송으로서 국민과 더불어 사회의 공공복지 증진과 민족문화 발전에 창조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국민경제의 번영을 촉구하는 데 공헌한다.”는 방송헌장(放送憲章)을 제정하였다.
1964년 5월 9일 정오부터 하루 20시간의 정규방송을 개시하면서 ‘우리는 전진한다.’, ‘우리는 창조한다.’, ‘우리는 듣고 보고 표현한다.’, ‘우리는 증언한다.’, ‘우리는 자유의 화신.’, ‘우리는 평화의 역군임을 선언한다.’는 요지로 개국을 선언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세번째의 민간상업방송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국 당시 기획실·총무부·업무부·방송부·기술부 등 1실 4부로 출발하였으며,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은 보도 9.9%, 사회·교양 21.4%, 연예·오락 28.7%, 음악 40.0%로서 종합편성보다는 중점 편성을 기본 방침으로 채택하였다.
특수청취자 계층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여 국내 최초의 심야방송으로 주로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신설하였고, 또한 운전기사에게 교통정보 등을 제공하는 「가로수를 누비며」와 같은 대상방송(對象放送)을 실시하였다.
1964년 5월 15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실업야구리그전 첫 실황중계를 했고, 6월 28일에는 주파수 640KHz로 변경했다. 1965년 8월 15일 을 기하여 회사명을 ‘라디오서울(RSB)’에서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JBS)’로 바꾸었으며, 11월 15일 다시 ‘주식회사 중앙방송’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12월 1일 방송국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의 중앙매스컴센터로 이전하고, 27일부터 오전 5시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으로 방송시간을 연장하였다.
1964년 11월 15일 「신가요 박람회」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가요풍토를 정화하고 건전가요를 산출하려는 노력 끝에, 1975년 개편될 때까지 10여 년간 500여 곡의 건전가요를 새로 발표하였다.
1966년 1월 25일 중앙텔레비전과 합병하였으며, 7월 16일 ‘주식회사 중앙방송’을 ‘주식회사 동양방송’으로 개칭하고 8월 8일 주파수를 다시 1,570KHz로 변경하였다.
그 해 12월 16일「장수무대」 첫 해외공연을 일본에서 가졌다. 1966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즐겁고 보람있는 방송, 동양라디오’라는 구호를 내걸고 청취자와 밀접한 방송을 만들기 위하여 힘썼다.
1967년 9월 17일에는 서강일(徐强一)과 로하스의 권투경기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통하여 중계방송하였고, 1968년부터는 「대학방송경연대회」를 열었다.
1968년 4월 24일 출력을 20㎾에서 50㎾로 증강시켰다. 1969년 9월 18일에는 군산에 있는 서해방송(西海放送)과, 1971년 3월 29일에는 광주에 있는 전일방송(全日放送)과 프로그램 제휴를 했다.
1973년 12월 31일 중앙일보와 ‘동양방송(동양라디오·동양텔레비전·동양에프엠)’을 합병,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으로 사명(社名)을 바꾸고, 1974년 8월 21일 멜로디를 넣은 콜사인(call sign)방송을 실시했다.
같은 해 10월 30일에는 장기 프로그램인 ‘장수무대’를 미국에서 공개방송했다. 또 다른 장수 인기프로그램으로는 「아차부인 재치부인」·「가로수를 누비며」 등이 있었다.
1976년 춘계프로그램 개편에서는 어린이와 도시 새마을 프로그램의 편성과 방송 제명의 우리말화를 시도하였다. 1978년 11월 13일 오전 5시를 기하여 주파수를 639KHz로 변경하였다. 프로그램편성은 보도 15.3%, 교양 33.1%, 오락 25.6%, 음악 26.0%였다.
이 방송은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또는 단독으로 많은 행사를 주관, 후원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전국시도대항 국민학교빙상대회, 경호(京湖)역전마라톤대회, 대통령배쟁탈전국고교야구대회·쌍룡기쟁탈 전국고교농구대회 등의 스포츠행사와 중앙음악콩쿠르·신춘중앙문예·왕위전·방송가요대상 등 일반 문화행사가 있었다.
1980년 11월 14일 한국방송협회의 임시총회에서 현 상업방송체제의 공영방송체제로의 전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함에 따라 그 해 12월 1일 한국방송공사에 흡수, 통합되어 KBS 라디오 제3방송으로 개편되었다.
1964년 12월 7일 우리 나라에서 첫번째의 민영상업 텔레비전방송국으로 개국했다. 1962년 12월 31일 서울국은 호출부호 HLCX, 출력 10㎾, 채널 7로, 부산국은 호출부호 HLSX, 출력 5㎾, 채널 9로 각각 가허가를 받은 후 1963년 2월 26일 ‘동양텔레비전방송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송신출력을 서울은 10㎾에서 2㎾로, 부산은 5㎾에서 500W로 변경하였다.
1964년 5월 14일 서울은 HLCE로, 부산은 HLKE로 호출부호를 변경하였다. 1964년 7월 22일 서울은 충무로 1가에, 부산은 대교동 1가에 연주소(演奏所)를 설치하고 8월 31일 첫 전파발사시험을 하였으며, 12월 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신세계백화점에서 개국하였다. 이때 서울국은 주 36시간 10분을, 부산국은 주 29시간을 방송하였다.
‘보다 빨리, 보다 널리, 보다 풍부하게’라는 구호를 내걸고, “평화·자유·번영을 구가하는 명랑한 민주사회의 건설, 신속하고도 정확한 보도전달과 올바른 여론조성으로 민주언론창달, 건전하고 명랑한 연예오락을 제공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활기를 주고, 상공업계와 국민간의 교량적 임무에 충실하여 산업경제 부흥과 소비대중의 복지향상을 촉구한다.”는 방송목표를 선언하였다.
개국기념 「버라이어티 쇼」와 특집방송극 「초설 初雪」은 당시까지의 생방송 위주의 방송을 탈피하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녹화 테이프를 통하여 방송되었다.
1965년 8월 15일 ‘동양텔레비전(DTV)’이 ‘중앙텔레비전방송주식회사(JBSTV)’로, 11월 17일 에는 ‘주식회사 중앙방송’으로 다시 변경하여 중앙라디오와 병합하고 12월 5일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 중앙매스컴센터로 이전했다. 1966년 8월 15일 부터 회사명을 다시 ‘주식회사 중앙방송’에서 ‘주식회사 동양방송’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5월에는 「한국의 전설」과 1968년 6월에는 「전설의 고향」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호,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967년 12월 29일에는 서울국과 부산국이 마이크로웨이브망(網)을 통하여 첫 이원동시방송(二元同時放送)을 실시하였다. 1967년 3월부터 11월 20일까지 약 8개월 동안 아침방송을 실시하였으며, 1969년 5월부터 다시 아침방송을 재개하였다.
1969년 11월 14일에는 운현궁(雲峴宮) 제3스튜디오를 개관하고, 이원방송을 실시하였으며, 1970년 6월 17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VTRCM을 제작, 방송하였다.
1970년 12월 31일 부산국 출력을 500W에서 2㎾로 증강시켰으며, 1972년 부산국 채널을 9에서 7로 변경하는 동시에 출력을 다시 5㎾로 증강시켰다. 1973년 12월 3일부터는 에너지파동으로 아침방송을 중단하였다.
1975년 1월 14일 보도국 기자들이 ‘언론자유의 수호’ 제3선언문을 결의하고 그 해 3월 13일 ‘언론자유수호결의문’을 채택,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세계가요제를 개최하였다. 1979년 12월 9일 15개국이 참가하였다. 1977년 11월 6일 여의도스튜디오를 착공하여 1980년 1월 개관하였다. 프로그램편성은 사회교양 40.2%, 보도 14.5%, 오락 45.3%의 비율로 구성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언론기관 통폐합조치로 동양텔레비전은 KBS 제2텔레비전으로 개편되었다.
1966년 4월 4일 ‘서울에프엠방송주식회사(FBS)’를 중앙방송이 인수, 합병하여, 4월 24일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 중앙매스컴센터로 장소를 옮기고 주파수 89.1MHz, 출력 1㎾, 호출부호 HLCD로 평일 11시간 휴일 14시간의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울FM의 무선국 허가가 법절차상 승계되지 않아 4개월 후인 8월 15일 방송부에 FM방송과를 신설, 방송시간을 1일 19시간으로 연장하였으며, 회사명도 ‘주식회사 동양방송’으로 변경하고 TBC-FM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1967년 12월 20일 출력 1㎾짜리 스테레오방송 첫 시험전파를 발사하였으며, 1969년 3월 31일에는 방송을 DJ시스템으로 전환시켰다. 같은 해 12월 19일 스테레오방송을 위한 무선국 변경허가를 받아 호출부호 HLCDFM을 HLKCFM으로 바꾸고, 1970년 2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FM스테레오방송을 부분적으로 시작하였으며, 1973년 4월 1일 완전 스테레오방송을 실시하였다. 1980년 12월 언론기관 통폐합조치로 KBS 제2FM으로 개편되었다.
언론통폐합조치 이후 동양방송은 2011년 12월 1일에 종합편성채널 JTBC로 부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