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태고종(太古宗)에 속한다. 사찰측의 구전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약 300년 전에 성씨 문중(成氏門中)에서 중창하고 매몰된 불상을 발굴하여 대웅전에 봉안하였으며, 1949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절터에서 수습되는 기와조각이나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창건된 절로 추정되며, 특히 대웅전 내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상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연화문(蓮華紋)·당초문(唐草紋)의 기와조각이 많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에 이곳을 지나던 왜병이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자 칼로 석불(石佛)의 목을 치니 불상의 목에서 피가 흘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이는 ‘남수원불당(南水院佛堂)’은 바로 이 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지금도 속칭 ‘남수원절’로 부르기도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내에는 10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비로자나불좌상과, 이 불상을 받치고 있는 연화대좌(蓮華臺座)가 있다.
이 가운데 연화대좌는 청주지방에서 발견된 것 중 대작에 속하며, 8각의 중대석(中臺石)의 후면에는 향로(香爐), 좌우 면에는 합장한 좌상(坐像), 나머지 5면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지권인(智拳印) 등을 취한 여래상이 모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로 조각되어 있어 이 지역 일대에 유행한 대좌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밖에 대웅전 앞에는 3층의 옥개석과 기단면석만이 남아 있는 3층석탑이 있고, 최근에 수습된 수막새·귀면와(鬼面瓦)·암막새 등이 있다. 이 중 수막새는 백제의 기와를 닮은 것으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형이 새겨져 있고 범자(梵字)가 양각되어 있는 기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