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 『신천지(新天地)』 38호에 발표되었고, 광복 후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예로 인정받고 있다. 전반기 작품의 ‘시대적 삶’의 양식에서 전환되어 ‘일상적 삶’의 시선으로 투영되는 후기적 성향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꾸려나가는 정례 어머니는 집문서를 은행에 잡혀 얻은 30만원으로 가게를 시작했으나 운영이 여의치 않자, 국민학교 시절부터 동경여자대학교까지 동창인 김옥임의 동업 조건으로 10만원 밑천을 받아들이게 된다.
거기다가 정례 아버지가 물려받은 마지막 전장을 팔아서 부리던 택시가 가게의 돈을 솔솔 빼가다가 거덜을 내자 가게는 더욱 옹색해진다.
일제강점기 때 고관으로 행세하다가 광복과 함께 반민법(反民法)으로 몰락했고 중풍으로 누운 남편을 둔 옥임은 고리대금업자로서 친구인 정례 어머니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옥임은 가게 보증금 영수증을 담보로 출자금을 1할 5부의 이잣돈으로 돌려 제 살 궁리만 한다.
정례 어머니는 옥임을 통하여 알게 된 교장선생이라는 영감에게서 5만원을 더 빌려 가게의 형편을 수습하려고 하였으나, 옥임은 자신이 빌려준 돈을 교장 영감에게 일임하여 원금에 빌린 이자를 합친 액수의 이자를 갚게 만든다.
은행에 30만원, 옥임에게 22만원, 교장영감에게 5만원 도합 57만원의 빚을 걸머진 정례 어머니는 어느 날 황토현 정류장에서 만난 옥임에게 망신을 당한다. 두 달에 걸쳐 억지로 교장 영감의 빚은 갚았으나, 급기야 석달째에는 보증금 8만원마저 되찾지 못한 채 빚으로 에우고 상점을 교장 영감의 딸 내외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몸살감기에 울화로 누운 정례 어머니를 위로한답시고 정례 아버지는 옥임을 골릴 궁리를 하며 껄껄 웃었다.
이 작품은 광복 직후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었던 물질적으로 파산하여가는 인간과, 정신적으로 파산하여가는 인간의 두 유형을 정확하고 치밀한 객관적 사실묘사로써 생생한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정례 어머니의 물질적 파산 과정이라든지 김옥임의 정신적인 파산의 심리적 추이라든지, 그 사이에서 교묘하게 중간이득을 획득해내는 교장 영감이라는 자의 간악한 행위 등이 당대의 사회적 현실이며 실제적인 삶이었다.
작가는 이를 냉철무비(冷徹無比)한 사실적(寫實的)인 묘사를 통하여 하나의 작품으로서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작자의 소설 세계가 일상적 공간으로 변모되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해방 이후 우리의 일상이 식민화되어가고 있다는 이면의 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