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에 위치한 라틴계 공화국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225㎞이다. 면적은 23만 8391㎢, 인구는 2166만 6350명(2015년 현재), 수도는 부쿠레슈티(Bucharest)이다.
주요 민족은 루마니아인으로 89.5%에 달하며 나머지는 헝가리인과 독일인이다. 언어는 루마니아어가 공용어고, 그 밖에 헝가리어와 독일어도 소수어로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루마니아정교가 86.8%로 지배적이며, 가톨릭교 4.7%, 개신교 4.7%이다.
기후는 전체적으로 대륙성기후이며, 주요 자원은 석탄·석유·천연가스 등이다. 2015년도 국민총생산량은 1771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717달러이다. 화폐는 레우(leu)를 사용한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상원(137석)과 하원(332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루마니아사회민주당, 민주당, 민족자유당, 헝가리민주동맹, 대루마니아당 등이다.
14세기경부터 루마니아인의 활동이 본격화되었으나 19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881년 독립하여 루마니아왕국을 세웠고, 1947년 12월 1일 헌법을 제정하고 12월 30일 루마니아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65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국호를 고쳤고, 차우세스쿠(Ceausescu, N.)가 당 제1서기가 되었다. 1964년 4월 탈소련 자주화 노선을 선언한 후 국가이익과 주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해 왔다. 차우세스쿠는 1967년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9년 12월 민주혁명으로 사형당할 때까지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그 일가를 당과 정부의 요직에 임명하여 족벌체제를 구축, 권력을 독점하고 강권통치를 행사하였다.
차우세스쿠는 외교면에서는 자주·독립 노선을 강력히 추진하였고, 국내에서는 언론 통제와 자유화요구운동의 탄압을 강화하였으며, 대외 채무의 완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국민에게 금욕생활을 강요하였다.
1989년 11월 당대회에서 차우세스쿠가 당 서기장으로 6번째 재선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차우세스쿠의 강경통치에 항의하여 시위가 일어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무장봉기가 확산되고 결국 차우세스쿠 정권은 붕괴되고, 차우세스쿠는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었다.
루마니아 구국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26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이온 일리에스쿠를 중심으로 신정부를 구성하고, 1990년 1월 공산당의 해체와 함께 공산당 정치국원들을 전원 투옥시킨 가운데 다당제 도입, 사형제 폐지, 토지 분배, 주5일제 근무, 종교의 자유 인정 등을 골자로 하는 향후 신정부의 정국 운용계획을 발표하였다.
1990년 5월 총선거 후 1991년 12월 신헌법을 확정하였다. 1992년 10월의 총선에서도 일리에스쿠 대통령이 73%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사회주의 국가사상 집권당이 승리하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여 경제 개혁을 시행했으나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따른 실업, 인플레이션, 에너지 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격었다.
1996년 11월 1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민영화 촉진을 통한 산업 재건, 정치적 민주화, 친서방 정책 등을 공약으로 내건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민주회의(CDR) 후보(비공산계 인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같은 해 11월 3일 총선에서는 중도 우파의 야당 연합인 CDR이 집권 사회민주당(PDSR)을 누르고 제1당으로 부상하였다.
총선 후 치오르베아 총리하에 민주회의(기민·자유당, 시민동맹)가 민주당 등 6개 정당과 우파 연정을 구성해 왔다. 그러나 연정 내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면서 연정 내 제2당인 민주당이 총리 사임을 요구, 1998년 4월 15일 바실레 총리의 신내각이 출범했다.
루마니아는 1955년 유엔에 가입하고, 1970년대 초반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세계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하고 유럽연합(EU)과의 경제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중도우파를 자처하며 민족·영토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헝가리·구소련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관계 정상화에 노력하면서 경제 개혁과 시장경제 체제 전화을 위해 서방 및 국제 경제 기구와의 협력 강화 등 경제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루마니아 사이에는 1974년 3월 부쿠레슈티의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 한국의 공식대표단을 파견하였고, 1979년 8월 부쿠레슈티의 유엔과학기술개발회의에 과학기술처장관 등의 대표단이 참석하였다.
루마니아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85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1990년 3월 30일 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같은 해 6월에 공관을 설치하였다.
양국 간에는 1990년 5월 체육교류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90년 8월 무역 협정, 경제과학기술 협정, 투자보장 협정을 체결하였고, 1991년 3월에는 항공 협정, 1991년 10월에는 문화 협정, 1994년 10월에는 이중과세방지 협정, 1996년 5월에는 일반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97년 5월에는 투자보장협정 개정각서, 2005년 10월에는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 개정의정서, 2006년 9월에는 투자보장협정에 관한 의정서, 과학기술개발 및 혁신협력의정서, 2008년 9월에는 한국-루마니아 법무협력협정서와 사회보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루마니아에 수출액은 5억 39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부품·중후판·합성수지·선박부품 등이며, 수입액은 6억 15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부품·무선통신기기부품·직물제 의류 등이다.
루마니아 주재 한인들의 모임인 한인회가 1993년 결성되었으며,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LG전자,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대우조선, 삼성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232명의 한국민 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48년 11월 3일 수교하였고, 1951년 12월 북한의 주 루마니아 상주 공관이 개설되어 2006년 10월 현재 존속되고 있다. 1952년 4월 루마니아의 주 북한 상주 공관이 개설되었으며, 1984년 6월에는 김일성 주석이 루마니아를 방문한 바 있다.
양국 사이에는 1956년 5월 문화협조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61년 1월에 방송협조 협정, 1971년 9월에 무상군사원조협정, 1975년 5월에 친선 및 협정조약, 1982년 4월에 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의 기본방향에 관한 협정, 사회보장분야협조 협정, 1985년 10월에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 1991년 1월에 무역지불 협정, 1995년 11월에 외무부간협조 의정서, 1998년 2월 투자보호 및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0년 10월에 통상경제 협력 및 지불 협정, 경제과학기술공동위설치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2014년 현재 북한의 대 루마니아 수출액은 11만 7000달러로 주종목은 섬유이며, 수입액은 6,000달러로 비금속제품이 주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