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배는 별도의 굽을 만들지 않고 곧게 선 입술로 연결되는 팽이 모양의 잔으로,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고 잔탁(盞托, 잔 받침대)과 함께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가 저술한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에는 주배(酒杯, 술잔) 중 굽이 너무 높아 불안정하여 대각(臺脚)을 잡고 사용하기 때문에 마상배라는 속칭(俗稱,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종은 ‘팔(八)’자로 뻗은 높은 다리 위에 잔 모양의 배신(杯身, 몸체)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로 고족배(高足杯)라고 한다. 즉 1930년대에는 저부가 뾰족한 팽이 형태의 잔과 높은 굽이 달린 잔이 마상배라는 용어로 혼용되어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굽에 얕은 잔이 달린 고족배라는 기형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여[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은 대부분 고배(高杯, 굽다리 접시)라고 부름] 조선시대까지 제작되었고, 이와 관련된 명칭은 중국의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헌자료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고족배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다만, 마상배는 단어의 연원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잔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타탕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상배는 각배(角杯, 뿔모양 잔)와 같이 저부(底部, 그릇 아랫부분)가 뾰족한 잔의 형태를 띠고 있어 말 위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마상배라는 단어의 연원을 찾기 위해 문헌이나 사료, 선학들의 연구물 등을 검토해 본 결과, 논리적 근거와 정확한 어원을 찾기 어려워 마상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잔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타탕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상배는 뾰족하게 만든 저부 위로 사선으로 뻗어 올라가 직립하는 입술로 이어진다. 별도의 굽을 만들지 않은 저부는 외면에서 깎아내어 정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고려시대의 청자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으며, 상감기법(象嵌技法: 백토와 자토를 감입하여 문양을 장식하는 기법)을 이용하여 외면을 장식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문양을 장식하지 않은 무문 청자도 확인된다.
굽이 없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없는 기종으로 잔탁과 함께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의 잔탁의 경우, 굽 위에 넓은 전만 올린 뒤 ‘⊓’ 형태의 잔좌(盞座: 잔을 올려놓는 받침대)를 만들지 않고 잔 모양의 형태를 만들어 그 중앙을 원통형으로 뚫어 놓은 잔탁이 있다. 이러한 잔탁이 마상배라 불린 저부가 뾰족한 형태의 잔과 함께 세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잔(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