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명기는 죽은 사람의 내세를 위하여 무덤에 함께 묻던 그릇, 인형, 생활 용구 등의 기물이다. 순장의 폐해를 없애고 죽은 이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했다. 명기는 넓은 의미로 무덤에 부장되는 모든 부장품을 뜻한다. 협의로는 조선 시대에 부장된 10㎝ 이하 소형 규격의 기물을 의미한다. 소형 명기는 16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부장되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명기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기는 자기·도기·와기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어 당시 공예품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한 조선 시대의 상장례 풍습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정의
죽은 사람의 내세를 위하여 무덤에 함께 묻던 그릇, 인형, 생활 용구 등의 기물.
개설
연원 및 변천
신라시대인 503년(지증왕 3)에 순장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경상북도 경주 황성동 · 용강동 석실분에서 토용(土俑) 및 명기가 부장된 것을 통해 순장 풍습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의 명기 관련 기록은 1418년(세종 1)을 시작으로 1823년(순조 23)까지 총 71건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된다. 그 중 『세종실록』 「오례」 흉례의식 천전의(遷奠儀)에는 “명기는 신명의 것이다. 모양은 평시와 같이 만드는데, 다만 추악하고 작을 뿐이다(明器 神明之也 象似平時而作 但麤惡而小耳).”라고 정의하고, 그 뒤에 종류와 수량에 대해 기록해 두었다.
위 기록들로 보면, 명기는 순장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등장하였으며, 죽은 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하여 무덤에 부장한 소형 그릇이자, 그 혼을 위로하기 위한 의례기였던 것이다.
내용
『세종실록』 「오례」 흉례 서례(序例) 명기 조에는 명기의 이름과 재질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로 제작된 것은 영(嬰) · 주준(酒尊) · 주병(酒甁) · 잔탁(盞托) · 향로 · 반발(飯鉢) · 시접(匙楪) · 갱접(羹楪) · 찬접(饌楪) · 적접(炙楪) · 소채포해접(蔬菜脯醢楪) 등이 있고, 주준은 도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죽기(竹器)는 소(筲)가 있으며, 목기로는 숟가락[匙] · 젓가락[筯] · 관반(盥盤) · 관이(盥匜)가 있다. 검은색 옻칠을 한 칠기는 향합, 장(杖), 식안(食案), 식탁(食杔), 타우(唾盂), 혼병(溷甁), 수기(溲器) 등이 있으며, 와기(瓦器)로는 와정(瓦鼎) · 와증(瓦甑) · 와조(瓦竈) · 와무(瓦甒)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재질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환부(丸釜) · 포작(匏勺) · 궤(几) 등도 명기로 제작되었다.
명기는 품계에 따라 차별이 두어진 사실이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편찬된 예서에서도 일관되게 품계에 따른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이 성리학의 실천지침인 주자가례의 시행에 따라 엄격한 계층별 구분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상황은 명기와 함께 부장된 지석(誌石)의 제작 양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현황
이후 16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소형 명기 부장이 본격화된다. 노옥손(盧玉孫) 묘 출토 백자명기 일괄(1560년경), 권수(權守) 묘 출토 백자명기 일괄(1580년), 광해군 묘 출토 백자명기 일괄(1589년), 권경남(權慶男) 묘 출토 백자명기 일괄(1609년)에서는 일상기명을 작게 만든 명기와 인물상, 마상(馬像), 기마인물상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유적 발굴조사에서도 백자명기를 비롯하여 와기로 제작된 명기가 다량 확인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백자로 만들어진 명기는 문양이 없는 순백자도 있지만, 청화백자, 철화백자, 투각백자 등 다양한 장식기법이 활용되어 제작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예기(禮記)』
- 『조선왕조실록』
- 『한국도자사전』(전승창 외, 경인문화사, 2015)
- 『서울 진관동 유적』(한강문화재연구원, 2010)
- 『은평 진관동 분묘군』(중앙문화재연구원, 2009·2010)
- 『주자가례』(주희 지음, 임민혁 옮김, 예문서원, 2007)
- 『고령김씨 송암공파(松庵公派)』(공주대학교 박물관, 2004)
- 『명기와 묘지』(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1978)
- 「조선시대 자기제 지석의 변화와 특징」(김세진, 『미술사학연구』 271·272호, 2011)
- 「조선시대 명기의 연구」(이지현,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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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풀을 엮어 만든 인형. 죽은 사람의 뒤를 따라 죽은 순사자(殉死者) 대신으로 쓰던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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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흙으로 만든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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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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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흙으로 만든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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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의 하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해ㆍ경주 등지에서 많이 발굴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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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밑이 둥근 항아리 따위의 그릇을 올려놓는 데 쓰던 받침. 삼국 시대 특히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많이 나오며 굽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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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대나무로 만든 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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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기와의 재질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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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사대부와 서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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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껴묻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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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풀을 엮어 만든 인형. 죽은 사람의 뒤를 따라 죽은 순사자(殉死者) 대신으로 쓰던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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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철사로 그릇에 무늬를 넣거나 그림을 그려 구운 백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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