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원삼국시대 한반도 동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서 유행한 말 모양의 띠고리.
개설
원삼국시대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집자리나 환호 등에서도 확인된다. 현재까지 출토 사례는 동남부 지역에서 약 30여 점이 있고 중서부 지역은 약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기원
변천 및 현황
말모양띠고리는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은 서기전 1세기 대의 영천 어은동 출토품으로 말의 형태가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동남부 지역에서는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까지 사용되며 대체로 말 모양이 사실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대의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물과 함께 출토되지만, 서기 2세기에는 목걸이와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서부 지역은 서기 2세기에 출현하여 서기 4세기까지 사용되는데 주구가 달린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말모양띠고리의 출토 시기와 분포를 통해 볼 때 동남부 지역의 진 · 변한과 중서부 지역의 마한 간의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상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말모양띠고리는 서기 4세기 대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가 확인되고 있어 양 지역간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형태와 제작 방식
동남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는 얼굴과 목, 배, 엉덩이, 격판에 집선문과 삼각점열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는 얼굴과 배, 격판에 격자문과 원형점열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말모양띠고리의 제작은 유물에 남아 있는 주조 흔적으로 볼 때 밀랍을 사용하여 거푸집을 만들었다. 밀랍으로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긴 다음 거푸집을 주물사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청동 요액은 둥근고리를 통해서 주입하였다.
지역별로 제작 기술에 차이가 확인되는데 문양을 새기는 방식에서 제작 방식에 차이가 확인되고 가스 배출 기술에서 기술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에서 기포가 터져 구멍이 나 있는 말모양띠고리가 많이 확인된다.
착장 방식
그런데 한반도 남부 지역의 띠고리는 허리띠의 재질에서 중국과 차이가 확인된다. 말모양띠고리 뒷면의 둥근고리에는 섬유를 짜서 만든 노끈과 같은 형태의 유기물이 잔존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말모양띠고리의 허리띠는 가죽이 아닌 노끈의 형태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 박장호, 「중서부지역 출토 진변한계 물질문화의 고고학적 연구」(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 김동일, 「동북아시아 호형장식의 표상과 한반도 출토 호형대구의 기원 연구」(『고고광장』 25, 부산고고학회, 2019)
- 박장호, 「원삼국기 동물형대구의 전개와 의미」(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 강인욱, 「한반도 출토 동물형 대구의 계통에 대한 시론적 검토」(『호남고고학보』 19, 호남고고학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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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진(秦)나라의 제1대 황제(B.C.259~B.C.210). 이름은 정(政).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중앙 집권을 확립하고, 도량형ㆍ화폐의 통일, 만리장성의 증축, 아방궁의 축조, 분서갱유 따위로 위세를 떨쳤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47~기원전 210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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