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후기(日本後紀)』에 의하면 고구려 악사(樂師)와 백제 악사는 횡적(橫笛)·군후(ꜭ篌)·막목(莫目)·무(舞)의 4인이고, 신라 악사는 금(琴)과 무의 2인이었다고 한다.
그 형체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고, 그에 관한 여러 학설이 있다.
이혜구(李惠求)는 오현(五絃 : 琵琶)·지(篪)·향피리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하였다가 뒤에 고구려나 백제의 관악기 중 하나일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이 학설에 의하면 지나 향피리 중 하나에 해당한다.
반면, 일본의 다나베(田邊尙雄)는 향피리라고 하였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대피리였던 마무(マム), 즉 종적(縱笛)의 일종인 도피피리(桃皮蓽篥)가 오래 전 한국을 통하여 일본에 전하여졌다고 하면서, 한국에서는 당피리에 대하여 향피리로 부르던 이 악기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1) 중기에 새로운 아악관현제(雅樂管絃制)가 정해질 때, 당악(唐樂)이든 고려악이든 모두 당피리로 통일되었다고 보았다.
이 두 설에 의하면 막목이 고대 한국의 관악기의 일종이라는 것 이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