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망월사에 소장되어 있는 19세기 불화.
개설
내용
중앙의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가슴 부근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근으로 내려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손가락을 마주한 특이한 수인(手印)을 취하였다. 좌측에는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이 두 손으로 길게 여의(如意)를 들고 있으며 우측의 대세지보살은 연꽃가지를 길게 잡고 있다. 두 보살은 입상으로 표현되었으면서도 마치 앉아있는 것처럼 신체가 짧아 어색한 느낌을 준다. 관음보살 위로는 노비구 모습의 가섭존자가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손가락을 곧게 세워 올렸으며, 반대편에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아난존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한편 가운데 존상인 아미타불에 대해서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불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는 아미타괘불화로는 1905년에 조성된 범어사 아미타괘불화가 있으며 두 본 모두에 고산 축연이 참여하였다. 따라서 1887년 망월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했던 축연이 1905년 범어사 괘불 조성에 망월사 괘불 도상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19세기 중엽 이후에 조성된 괘불화가 20점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16점의 괘불화가 아미타계 불화이므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아미타계 괘불화가 유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조선말기 불교 교단은 만일염불회(萬一念佛會)와 수월도량공화불사(水月道藏空花佛事)가 성행하였고, 만일염불회에서는 아미타 염불신앙이 크게 유행되어 불사를 진작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이러한 조선말기 아미타신앙은 괘불화에서도 아미타불 도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
화기(畵記) 말미에는 ‘이 공덕이 누구에게나 두루 미쳐 모든 중생(衆生)이 극락정토에 태어나서 무량수(無量壽)를 친견(親見)하면서 다 같이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기원한다’는 발원문이 기록되어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괘불조사보고서(掛佛調査報告書)』1(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 「조선 말기의 정토신앙과 아미타계 괘불화」(김정희, 『강좌미술사(講座美術史)』33, 한국미술사연구소, 2009)
- 「조선후기(朝鮮後期) 괘불정(掛佛幀)의 연구(硏究)」(정명희, 『미술사학연구』242·243, 한국미술사학회, 2003)
- 「조선후기(朝鮮後期) 괘불정화(掛佛幀畵)의 연구(硏究)」(정명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조선(朝鮮) 후기(後期) 서울·경기지역 괘불정화(掛佛幀畵)의 고찰(考察)」(유마리, 『강좌미술사(講座美術史)』7, 한국불교미술사학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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