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조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1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권두에 정호(鄭澔)·권상하(權尙夏)·김영한(金寗漢)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유(金楺)·김무·김재로(金在魯), 그리고 저자의 후손 조술(曺述)·조임(曺霖)·조경승·조병태·조세영(曺世永) 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내용
시는 저자가 1498년(연산군 4) 성절사(聖節使)로 중국을 오고가면서 지은 것과 국내에서 읊은 시로 구분되어 있다. 국내에서의 시는 저자의 자형(姉兄)이자 스승인 김종직(金宗直)과 창화한 것이 비교적 많다. 서(序)에는 1481년(성종 12) 왕명으로 두시(杜詩)를 언해(諺解)한 뒤 그 내력을 적은 두시서(杜詩序)가 있다.
기에는 1477년 성종이 집현전 대신 예문관을 설치하고 이어 문신들의 독서 장소로 용산(龍山)에 위치한 공해(公廨)를 독서당(讀書堂)으로 개조한 뒤 그 내력을 적으라는 명을 받고 쓴 독서당기(讀書堂記)가 있다. 또한, 1483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죽자 인수대비(仁粹大妃)와 인혜대비(仁惠大妃)가 그 유지를 받들어 죽은 왕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해인사를 중창했다는 내용의 해인사중창기(海印寺重創記)를 작성했다.
계와 의는 1479년 4월에서 1493년 10월까지의 사이에 경연(經筵)에서 논의했던 일들을 적은 것이다. 사화실기에는 성종의 명에 의해 김종직의 시문을 찬집하게 된 것이 저자가 2차에 걸쳐 참혹한 화를 당하게 된 동기가 되었음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밖에 김굉필(金宏弼)·홍귀달(洪貴達)·김일손(金馹孫)·이재(李縡)·송시열(宋時烈)·윤염(尹琰), 그리고 이정보(李鼎輔) 이하 27명의 저자에 대한 각종 기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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