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내의 고려시대 탑비의 음명(陰銘).
개설
내용
“도평성에서 홍준화상 중도의 우법사에게 첩문을 보내어 알린다. 사(師)의 계(啓)에 의하면 승(僧)의 경우에는 적아현(赤牙縣)의 취산(鷲山)에 신처소(新處所)를 처음으로 (조정에) 보고하여 (사찰을) 조성하고 있는 바이라고 보고하시었다. 현(縣)으로부터 입경(入京)하도록 부림을 받은 김달사가 (도평성)에 출두하여 우사(右寺)의 터를 묻되 대산(大山)이므로 따로 지주(地主)가 없으며 스님들의 보고하신 모양과 같이 가지곡(加知谷)의 사곡(寺谷)에 들어가 조성하시고 있는 바이라고 사뢰는 뜻을 직접 보고하였다. 이때에 교지(敎旨)가 내렸으니 ‘그러한가, 호정(戶丁)의 지(地)를 지사자(승려)가 국가의 대복전처로 삼고 (이를) 조성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부리시도록 하라.’고 명하시었다. 천복 4년 을해 8월 1일 성사 목광. 5년 신축 8월 21일 국가로부터 산원명(山院名)과 함께 14개 주·군·현의 계(契)로써 조성시키시었다. 이때의 성조사는 정조 인겸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 초기의 첩문과 (帖文) 그 이두에 (吏讀) 대하여 - 예천명봉사 (醴泉鳴鳳寺) 자적선사비의 (慈寂禪師碑) 음기의 (陰記) 해독 -」(남풍현, 『고문서연구』5, 한국고문서학회, 1994)
주석
-
주1
: 이두로 쓰인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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