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옥연기합록」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현웅린의 첫째 아들 현희백과 현천린의 둘째 아들 현희문의 혼인 관련 사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문소설이다. 가문 계승의 문제 대신 계모와 전실 자식 사이의 갈등 및 이복 자매 사이의 갈등 문제가 나타난다.
국문 필사본으로 총 2종의 이본이 있는데, 영남대학교 도서관본 25권 25책, 서강대학교 도서관본 25권 25책이며 모두 완질본이다. 영남대본의 표제는 「명쥬옥연긔합녹」과 「명주옥연기합록(明珠玉燕奇合錄)」 두 개이고 필사 시기는 1895∼1898년이다. 철종의 후궁 김상궁 철영, 저동궁 지밀상궁 서유순과 또 다른 궁녀가 나누어 전형적인 궁체로 궁중에서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글월 종이를 모아서 그 뒤쪽에 필사하였다. 이러한 일은 매우 드문 일이며, 당시 궁중 여인들의 국문 소설 탐독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므로 매우 가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서강대본의 표제는 「명주옥연기합록(明珠玉緣奇合錄)」이고 내제는 「명쥬옥연긔합녹」이다. 책의 보관 상태와 글씨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두 이본은 한자 표제와 표기법, 오기와 탈락 등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다.
「명주옥연기합록」은 「현씨양웅쌍린기(玄氏兩熊雙麟記)」- 「명주기봉(明珠奇逢)」의 연작을 잇는 후속편이다. 이 작품은 다시 「현씨팔룡기(玄氏八龍記)」로 이어진다고 되어 있으나 「현씨팔룡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로서 「명주옥연기합록」은 3부 연작 소설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씨양웅쌍린기」-「명주기봉」과 어느 정도 시간 차이를 두고 19세기 초반~19세기 중반 이후에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앞의 두 작품보다 늦게 창작되어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읽혔으며 이본 수가 적은 것으로 보아 인지도도 낮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송나라 인종 때 서평후 현웅린의 첫째 아들인 희백의 관례를 행하는 자리에 참석한 광평왕은 희백의 됨됨이에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희백을 윤씨의 딸인 옥화군주 벽주의 배필로 삼고자 청혼을 한다. 현씨 집안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두 사람을 혼인시킨다. 그러나 광평왕의 숙빈 황씨는 자신의 딸인 교주와 희백이 성혼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교주 또한 옥화군주를 몰아내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면서 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현숙한 옥화군주는 온갖 어려운 역경을 모두 참고 견뎌내어 마침내 교주의 계책에서 벗어나 희백과 화락한 삶을 살게 된다.
한편, 평제왕 현천린의 둘째 아들인 희문은 연소저와 성혼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액운과 재앙이 막혀 있었다. 이들은 액운을 풀기 위해 오래도록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헤어져 사는 동안 연소저는 도를 닦아 위로는 천문(天文)에 능통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에 통달하는 힘을 지니게 되고 병서와 의서에도 능통하게 된다. 어느 날 파서 지방에 변란이 일어났을 때, 희문은 참모사(參謀師)로 출정하였다가 적이 쏜 화살을 맞고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이때 연소저가 '물외객'이라는 가명을 쓰고 나타나 죽어가는 희문을 구원한다. 변란이 평정된 뒤 이들은 서로가 부부 사이임을 확인하고 남은 생을 화평하고 즐겁게 지낸다.
이 작품은 다른 조선 후기 대장편 소설과 비슷한 권선징악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옥화군주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현숙함을 지니는 전형적인 여성 인물과 달리, 연소저는 여성 영웅과 같은 엄청난 능력자로 등장한다. 이는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참여도가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한편, 「명주옥연기합록」에는 계모와 전실 자식의 갈등을 담은 계모설화(繼母說話)가 수용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계모설화를 가지고 와서 계모와 그 계모가 낳은 자식이 가문을 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들을 가문에서 축출하고 죽음으로 벌함으로써 자신들의 질서가 영원히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다. 곧 이복 자매 사이의 갈등을 계모설화와 가문소설(家門小說)이라는 장르적 통합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원형으로 기억되는 계모설화의 요소를 끌어들이면서도 일부 벌열가의 소망이 담긴 가문소설의 지향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