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에서 좌수위소장(左首衛小將)으로 있었다. 925년(태조 8) 12월 검교개국남(檢校開國男) 박어(朴漁) 등과 함께 백성 1,000호(戶)를 데리고 고려에 귀순하였다. 귀순배경은 당시 고려로 파상적으로 밀려들어오는 발해유민과 마찬가지로, 거란의 침입을 받아 이듬해 발해가 멸망한 동북아 정세변화와 관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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