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암

  • 예술·체육
  • 유적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조선전기 학자 성운과 김천부가 은거하던 주택.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춘
  • 최종수정 2024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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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조선전기 학자 성운과 김천부가 은거하던 주택.

내용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성운(成運)과 김천부(金天富)가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건물이다.

성운이 을사사화로 그의 형 근(近)이 화를 당하자 뜻을 버리고 처가인 종곡리에 내려와 처남 김천부와 함께 숨어살던 작은 기와집이다. 1550년 경에 처음 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87년(고종 24)에 후학들이 두 분을 사모하여 모현암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갖고 있는 소박한 집이다. 성운이 후사가 없어 이 건물은 현재 모현암 대곡 서당계 소유로 되어 있다. 모현암 대곡 서당계가 또한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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