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강원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사아(士雅). 이조참판 목첨(睦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목서흠(睦敍欽)이고, 아버지는 목겸선(睦兼善)이며, 어머니는 민형남(閔馨男)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공조정랑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6년 지평이 되고, 그 뒤 수찬·정언·지평·교리·부수찬·집의·수찬·사간·부응교·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남인인 목임유는 1679년 8월 집의로서 송시열(宋時烈)의 처벌을 주장한 바도 있었다.
그 뒤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체직당하였다가 1689년부터 남인이 재집권하게 되자 승지·강춘도관찰사(江春道觀察使)·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694년 갑술환국 이후 남인이 실각하면서 삭출(削黜)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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