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2 원성대왕조에 실려 있다. 원성왕은 신라 38대 임금으로 이름은 김경신(金敬信)이다. 처음은 이찬 김주원(金周元)이 상재(上宰)에 있고 김경신은 각간으로 차재(次宰)에 있었으나, 길몽을 얻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경신은 꿈에서 복두(幞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십이현금(十二絃琴)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시켜 해몽을 하였더니,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에서 떠날 징조요, 금(琴)을 든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고 답하였다.
김경신은 이 말을 듣고 근심하여 두문불출하였는데, 그 때 아찬(阿飡) 여삼(餘三)이 경신의 근심함을 알고 찾아와 그 꿈을 새롭게 해몽하였다. 복두를 벗은 것은 다른 사람이 공의 윗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음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왕관)을 쓸 조짐이며, 십이현금을 든 것은 십이대손(내물왕의)이 대를 이을 징조이며,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길조라는 것이다.
이에 김경신이 다시 자기 위에 김주원이 있는데 어찌 윗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여삼은 열심히 알천신(閼川神)에게 제사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니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이 알천의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홍수가 져 냇물이 불어 건너오지를 못하였다.
그러므로 김경신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이가 곧 원성대왕이다. 강릉 김씨 시조전설에는 김주원 공이 비가 멎은 뒤 궁궐로 달려왔으므로 원성왕이 왕위를 사양하였으나 김주원은 이것이 하늘의 섭리임을 말하고 조용히 자신의 고향인 명주로 내려갔다 전한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명주가(溟州歌)」는 바로 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無月郎)과 어머니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 사이에 인연이 맺어지게 된 근원설화로 알려져 있다.
무월랑이 명주에 유학하면서 연화와 정을 맺은 뒤, 연화가 기른 잉어가 매체가 되어 뒷날 연화로 하여금 무월랑의 아내가 되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주원은 그 아들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인데, 『삼국유사』에는 김경신이 왕이 된 뒤 김주원이 명주로 돌아가 정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경신의 꿈 해몽은 「춘향전」에서 옥중 춘향의 꿈 해몽과도 같고, 서까래 셋을 지고 우물 속으로 든 왕건(王建)의 꿈과도 유형이 같다. 전혀 다른 각도의 해몽을 그 뒤 역사적 사실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설화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김경신이 왕이 되었을 때에는 여삼은 죽고 없었으므로 원성왕은 그 자손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성왕은 진실로 인생의 곤궁하고 영달하는 이치를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를 지었다고도 하는데 그 노래는 전하지 않아 내용을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