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 원성왕의 꿈을 다룬 설화.
내용
김경신은 꿈에서 복두(幞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십이현금(十二絃琴)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시켜 해몽을 하였더니,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에서 떠날 징조요, 금(琴)을 든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고 답하였다.
김경신은 이 말을 듣고 근심하여 두문불출하였는데, 그 때 아찬(阿飡) 여삼(餘三)이 경신의 근심함을 알고 찾아와 그 꿈을 새롭게 해몽하였다. 복두를 벗은 것은 다른 사람이 공의 윗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음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왕관)을 쓸 조짐이며, 십이현금을 든 것은 십이대손(내물왕의)이 대를 이을 징조이며,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길조라는 것이다.
이에 김경신이 다시 자기 위에 김주원이 있는데 어찌 윗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여삼은 열심히 알천신(閼川神)에게 제사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니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이 알천의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홍수가 져 냇물이 불어 건너오지를 못하였다.
그러므로 김경신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이가 곧 원성대왕이다. 강릉 김씨 시조전설에는 김주원 공이 비가 멎은 뒤 궁궐로 달려왔으므로 원성왕이 왕위를 사양하였으나 김주원은 이것이 하늘의 섭리임을 말하고 조용히 자신의 고향인 명주로 내려갔다 전한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명주가(溟州歌)」는 바로 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無月郎)과 어머니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 사이에 인연이 맺어지게 된 근원설화로 알려져 있다.
무월랑이 명주에 유학하면서 연화와 정을 맺은 뒤, 연화가 기른 잉어가 매체가 되어 뒷날 연화로 하여금 무월랑의 아내가 되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주원은 그 아들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인데, 『삼국유사』에는 김경신이 왕이 된 뒤 김주원이 명주로 돌아가 정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경신의 꿈 해몽은 「춘향전」에서 옥중 춘향의 꿈 해몽과도 같고, 서까래 셋을 지고 우물 속으로 든 왕건(王建)의 꿈과도 유형이 같다. 전혀 다른 각도의 해몽을 그 뒤 역사적 사실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설화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김경신이 왕이 되었을 때에는 여삼은 죽고 없었으므로 원성왕은 그 자손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성왕은 진실로 인생의 곤궁하고 영달하는 이치를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를 지었다고도 하는데 그 노래는 전하지 않아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임영지(臨瀛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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