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야회록」은 벼루·먹·종이·붓의 문방사우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지은 전기체(傳記體)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문방사우 사이의 담화를 통해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논하였다. 신광한의 한문단편소설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실려 있다.
목판본은 1553년(명종 8)에 간행된 고려대학교 만송문고(晩松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린 것으로 총 25면, 매면 9행, 매행 16자로 되어 있다. 필사본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린 것이 있는데 총 20면, 매면 9행, 매행 18자로 되어 있다. 또, 규장각도서의 『수성지(愁城誌)』에 「수성지」와 함께 필사된 것이 있다.
주인공인 선비가 서당 밖에서 시를 읊다가 방안에 치의현관(䅔衣玄冠)·반의탈모(班衣脫帽)·백의윤건(白衣綸巾)·흑의흑모(黑衣黑帽)의 네 사람이 모여 서로 자신들의 가계와 생활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선비는 이들이 벼루·먹·종이·붓임을 깨달았다. 선비가 서로의 회포를 시로 읊자고 제의하여 읊기를 마치자 그들은 지금껏 주인의 은혜를 입었으니 멀리 버리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선비는 날이 밝자 자신이 쓰던 벼루와 붓과 먹을 닥종이[楮紙]에 싸서 땅에 묻었다. 그러고 나서 제문(祭文)을 지어 이들의 신위 앞에 정중한 제사를 드렸다. 그런 뒤에 이들 넷은 주인을 찾아와 사례하고는 선생은 4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축수하고 사라졌다. 그 뒤에 다시 이러한 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재야회록」은 버려진 벼루, 망가진 붓자루, 다 닳은 먹, 장독뚜껑으로 덮었던 닥종이의 문방사우가 가전(假傳)으로 의인화되어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들을 싸서 묻고 조상(弔喪)하는 글은 「조침문」과도 흡사하다.
선비가 오랫동안 애용하던 문구들을 의인화하여 주인과의 사이에서 자기 조상들의 역사적 계보와 내력을 이야기하고 못 다한 사실들을 시로써 읊어가는 구성법은 마치 진현(陳玄: 먹)·도홍(陶泓: 벼루)·모영(毛穎: 붓)·저선생(楮先生: 종이)으로 의인화된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 또는 조선 후기 남유용(南有容)의 「모영전보(毛穎傳補)」와도 흡사하다. 그러나 선비인 주인이 사용하던 문방구가 주인과 대화를 하고 제문을 지어 위로하자 수명까지 연장시켜 사례한다는 감응의 방법은 독특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