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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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당연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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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하여 얻은 체험이나 견문 · 감상 등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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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여행을 통하여 얻은 체험이나 견문 · 감상 등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
내용

기행문은, 첫째 언제 떠나고 돌아온다는 노정(路程)이 밝혀져야 하며, 둘째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는가의 목적과 목적지가 밝혀져야 된다. 셋째 무엇을 보고 듣고 겪었는가의 견문 체험적 내용이 있어야 하며, 넷째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이 어떻게 느꼈느냐의 감상과 객창감(客窓感)이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기 위한 문장은 산문이나 운문이 될 수도 있으며, 또 산문에 시가가 삽입되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장의 형식에는 크게 구애받을 필요 없이 수필이나 일기 · 편지 등 어느 것이나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기행문학이라고 할 때 이러한 형식적인 요소보다는 기행을 통한 감상 · 객창감 등의 방향이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자조문학적(自照文學的)인 성격의 작품이어야 하며, 표현의 문학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내용면에서 보면 기행문학은 유람기행(遊覽紀行) 또는 관유기행(觀遊紀行) · 사행기행(使行紀行) · 유배기행(流配紀行) · 피란기행(避亂紀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빼어난 산수를 찾는 기행문은 유람기행에 속하며 분량상으로도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한편으로는 뜻하지 않은 일로 고난의 길을 떠나는 경우나, 계획된 여행에서도 뜻하지 않게 생활상에 보다 관심을 가져 기행문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일제하의 간도기행류가 여기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유람기행의 범주에 넣는 것이 통례이다.

사행기행은 주된 목적이 직접 사신으로 가거나 따라가는 경우이므로 유람이 직접 목적은 아니지만 해외유람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산수를 찾는 것보다 이국정취, 대인관계의 기술들이 강조된다.

유배 · 피란 기행은 작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 즉 귀양살이나 전란을 피하여 다니면서 체험하는 생경(生硬)한 경험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작자가 처한 절박한 현실을 극복하는 고난상이 승화되어 있어 감동을 준다.

이들 작품 중 주요 산문과 가사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람기행 또는 관유기행 중 가장 오랜 작품으로는 고려말 임춘(林椿)의 <동행기 東行記>로 이 작품은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여행기이다.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 南行月日記>는 호남 전주 지역의 여행기이며, 이곡(李穀)의 <동유기 東遊記>는 오래된 금강산(金剛山) 기행문학 중 한 작품이다.

조선조에 오면 남효온(南孝溫)의 <금강산기행 金剛山紀行>이 유명하며, 이는 서명응(徐命膺)의 <유백두산기 遊白頭山記>로 이어진다. 김창협(金昌協)의 <동유기 東遊記>는 이십여 일에 걸친 본격적인 금강산 유람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으로는 이 밖에 <송경유기 松京遊記>도 유명하다.

지리산 기행으로는 김종직(金宗直) · 김일손(金馹孫)의 <두류산기행 頭流山紀行>과 조식(曺植)의 <유두류록 遊頭流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라산 기행으로는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 南槎錄>을 비롯하여 최익현(崔益鉉)의 <한라산기행 漢拏山紀行>이 많이 읽혀졌다.

이외에도 국내 다른 지역에 대한 기행으로, 정구(鄭逑)의 <가야산기행 伽倻山紀行>, 이황(李滉)의 <유소백산록 遊小白山錄>, 허목(許穆)의 <범해록 泛海錄>, 이상수(李象秀)의 <유속리산기 遊俗離山記>,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 妙香山小記>, 이덕무(李德懋)의 <북한산기행 北漢山紀行>, 채제공(蔡濟恭)의 <관악산기행 冠岳山紀行>, 송상기(宋相琦)의 <유계룡산기 遊鷄龍山記> 등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다.

명산뿐만 아니라 강과 호수 등을 찾아 노닌 작품으로도 강필신(姜必愼)의 <유낙동강기 遊洛東江記>를 비롯하여, 청풍 단양팔경을 읊은 심태첨(沈泰詹)의 <추유기행집 秋遊紀行集>, 개성의 박연폭포를 노닌 박장원(朴長遠)의 <유박연기 遊朴淵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문으로 지어진 작품들이지만 국문으로 창작된 유람기행 작품도 있다. 한문으로 표기된 작품에 반하여 국문으로 창작된 것은 더욱 값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는 신대손(申大孫)의 아내 의령남씨(宜寧南氏)의 작으로 밝혀진 <의유당관북유람일기 意幽堂關北遊覽日記> 중 <동명일기 東溟日記>이다.

함흥으로 부임하는 종숙(從叔)을 따라간 김원근(金元根)이 자기 누이인 순조비[明敬王后]에게 보이기 위하여 지었다는 <자경지함흥일기 慈慶志咸興日記>는 풍속화적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작자 미상의 <금강산유산일기 金剛山遊山日記>에는 정철(鄭澈)의 <관동별곡>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유람기행의 성격을 갖는 시문만 하더라도 200여편에 이르니, 선인들의 자연애와 관유벽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현재 전하는 국내 유람의 기행가사로는 평안도평사로 평안도 지방을 여행하고 지은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 關西別曲>, 종성부사로 부임하여 지은 조우인(曺友仁)의 <출새곡 出塞曲>이 있다. 또 호남의 명산인 천관산(天冠山)을 여행하고 지은 노명선(盧明善)의 <천풍가 天風歌>, 제천에서 영월을 지나 삼척을 여행하고 지은 권섭(權燮)의 <영삼별곡 寧三別曲>, 호남의 남쪽 섬 금당도를 여행하고 지은 위세직(魏世稷)의 <금당별곡 金塘別曲> 등도 전한다.

이외에도 제주도 목사로 부임하여 순행하고 지은 정언유(鄭彦儒)의 <탐라별곡 耽羅別曲>,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단양팔경을 구경하고 지은 신광수(申光洙)의 <단산별곡 丹山別曲>, 포쇄관(曝曬官)에 임명되어 봉화의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와 무주의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를 다녀와서 지은 국문가사인 박정양(朴定陽)의 <박학사포쇄일기 朴學士曝曬日記> 등이 있다.

특히 금강산 기행가사로 금강산을 구경하고 지은 박순우(朴淳愚)의 <금강별곡 金剛別曲>, 구강(具康)의 <금강곡 金剛曲> · <총석가 叢石歌>, 박희현(朴熺鉉)의 <금강산유산록 金剛山遊山錄> 등이 있는데, 실명씨의 작품까지 합하면 18편이나 된다.

공식적인 국외기행의 기록인 이른바 사행록(使行錄)류도 기행문학의 큰 몫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에워싸여 있어 양국의 영향을 여러 면에서 많이 받아왔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외교문제가 생길 때마다 중국에는 조천사(朝天使) 또는 연행사(燕行使), 일본에는 수신사(修信使) 또는 통신사(通信使)가 파견되었으며, 이들이 남겨 놓은 공적, 개인적 기록들이 많다.

중국쪽의 가장 오랜 것으로는 중종 때 소세양(蘇世讓)의 <양곡조천록 陽谷朝天錄>과 동행한 그의 조카 소순(蘇巡)의 <보진당연행일기 葆眞堂燕行日記>가 있다. 같은 무렵 동지사로 중국을 다녀온 정사룡(鄭士龍)의 <조천록 朝天錄>도 연대상으로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행시문류만 하더라도 200여 편에 이른다.

숙종 때 김창업(金昌業)이 그의 형 창집(昌集)을 수행하였던 기록인 <노가재연행일기 老稼齋燕行日記>는 문학적 가치 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그 이후에는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연기 湛軒燕記>가 대표적이다. 홍대용은 이와는 별도로 국문으로 된 방대한 <을병연행록 乙丙燕行錄>을 남겨 연행의 풍속도를 살펴볼 수 있는 전범이 되고 있다.

정조 때 박지원(朴趾源)은 박명원(朴明源)의 자제군관으로 수행하여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 熱河日記>를 남겼다. 국문으로 된 작품 가운데, 서유문(徐有聞)의 <무오연행록 戊午燕行錄>과 고종 때 홍순학(洪淳學)의 가사문학 작품 <연행가 燕行歌>는 기행문학의 백미라 할 만하다.

한편, 일본과의 관계에서 보면 송희경(宋希璟)의 <노송당일본행록 老松堂日本行錄>,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 海東諸國記>, 김성일(金誠一)의 <해사록 海槎錄>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열두 번에 걸친 공식 통신사절이 내왕하게 되는데, 이들 작품이 ≪해행총재 海行摠載≫에 전한다. 그 중에서도 경섬(慶暹)의 <해사록 海槎錄>, 강홍중(姜弘重)의 <동사록 東槎錄>, 김세렴(金世濂)의 <해사록 海槎錄>, 남용익(南龍翼)의 <부상록 扶桑錄>, 조엄(趙曮)의 <해사일기 海槎日記>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특히, 숙종 때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 海遊錄>은 문학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며, 영조 때 김인겸(金仁謙)이 지은 국문가사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는 가장 긴 장편가사로 기행가사의 백미이다.

연행사절이나 통신사절은 그 규모가 수백명에 이르며, 내왕하는 데에 연행사절은 근 반년, 통신사절은 근 1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중국의 연경이나 일본의 경도(京都 또는 江戶)를 다녀오는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이국의 풍물을 접했을 때의 경이로움과 회고, 관광, 그리고 외국 선비들과의 시문을 주고 받은 일 등을 통하여 자신의 견문기를 제각기 기술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되어 송환되기까지의 외국체험을 기술한 정희득(鄭希得)의 <월봉해상록 月峯海上錄>, 강항(姜沆)의 <간양록 看羊錄>, 노인(魯認)의 <금계일기 錦溪日記> 등도 피로기행의 한 항목으로 추가될 수 있다.

사행가사로는 중국의 연경을 다녀와서 지은 실명씨의 <연행별곡>, 박권(朴權)의 <서정별곡 西征別曲>, 김지수(金芝叟)의 <서행록 西行錄>, 유인목(柳寅睦)의 <북행가 北行歌> 등이 유명하다. 일본의 동경을 다녀와서 지은 사행가사로는 일본 명치유신(明治維新) 때 조선공사관의 참서관으로 11개월을 머물다가 귀국하여 몇 년 뒤에 지은 이태직(李台稙)의 <유일록 遊日錄>이 근대화하는 일본의 실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대한제국 말년에 아메리카합중국 하와이영사관협회 서기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지은 김한홍(金漢弘)의 <서유가 西遊歌>(일명 海遊歌)도 귀중한 기행가사이다.

해양기행으로는 성종 때 제주에서 아버지의 상을 듣고 바다를 건너오면서 중국을 거쳐 귀국한 최보(崔溥)의 <표해록 漂海錄>, 영조 때 과거를 보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다가 유구(琉球)에 표류되었는데, 안남(安南) 상선에 구출된 바 있는 장한철(張漢喆)의 <표해록 漂海錄>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주영편 晝永編≫에 보이는 고상영(高商英)의 <표류기 漂流記>, ≪패관잡기≫에 실린 박손(朴孫)의 <유구풍토기 琉球風土記>, 제주도에서 나주로 오다가 표류되어 중국의 영파부에 표착하여 글씨와 문장력에 감동된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북경을 거쳐 귀국한 최두찬(崔斗燦)의 <강해승사록 江海乘槎錄>, 역시 제주 앞바다에서 뱃놀이하다가 표류되어 중국을 거쳐 귀국한 이방익(李邦翼)의 <표해가 漂海歌>, 동해를 항해하다가 표류되어 일본의 북해도(北海道)를 거쳐 일본 동경을 지나 귀국한 이지항(李志恒)의 <표주록 漂舟錄> 등 많은 작품이 남아 전한다. 이들은 표류의 고난을 극복한 성취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유배기행으로는 산문작품들 가운데 지방풍물적인 성격의 작품들이 많다. 기묘사화 때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김정(金淨)은 그곳의 풍물지인 <제주풍토록 濟州風土錄>을 남겼다. 광해군 복위 모의에 연루되어 어린 나이에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이건(李健)은 제주의 특이한 풍속들을 여러모로 소개한 <제주풍토기 濟州風土記>를 남기고 있는데, 특히 산신신앙이나 무격신앙(巫覡信仰) 등의 소개가 이채롭다.

일찍이 <화사 花史>와 <수성지 愁城誌>의 저자인 임제(林悌)는 유배가 아닌, 당시 제주목사였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하여 배를 타고 들어가 풍토록 <남명소승 南溟小乘>을 남겨놓고 있다. 당시의 제주는 바다 멀리 외딴 섬이었으므로 가장 중죄인들이 그곳에 유배되었으며, 제주문화는 이러한 유배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제주목사 재임기간에 그곳의 풍토지로 기술한 이형상(李衡祥)의 <남환박물지 南宦博物誌>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국문으로 된 유배기록 가운데 대표적 작품으로는 <남해문견록 南海聞見錄>과 <북관노정록 北關路程錄>을 들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영조 때 유의양(柳義養)이 각각 남해(경상남도)와 종성(함경북도)으로 귀양가서 지은 것이다. 그곳은 한반도의 양극지가 되므로 방언에 대한 관심 외에 장례나 혼인풍습, 사당패놀이 등 특이한 생활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밖에 흑산도에 유배된 할아버지를 배웅하였던 박창수(朴昌壽)의 <남정일기 南征日記>와 철종 때 신지도(薪智島)에 유배되어 남긴 이세보(李世輔)의 <신도일록 薪島日錄> 등이 있다. 특히 이세보는 이 일기를 통하여 많은 시조를 남기기도 하였다.

유배를 원인으로 하여 지어진 기행가사로는 할아버지 송시열(宋時烈)이 덕원(德源)으로 유배되어 모시고 가면서 지은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 北關曲>과, 영조의 등극을 반대한 김일경(金一鏡)의 일당으로 연좌되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압록강에서 잡혀 추자도(秋子島)로 유배된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이 대표적이다. 이진유의 조카라는 이유로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지은 이광명(李匡明)의 <북찬가 北竄歌>도 있는데, 그는 이때 듣고 본 느낌들을 국문으로 <이주풍속통 夷州風俗通>을 지어 산문체 유배기로 남기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정조 때 대전별감으로 있다가 죄를 짓고 추자도로 유배되어 귀양지에서 지은 안조원(安肇源)의 <만언사 萬言詞>, 철종 때 언관(言官)으로 상소하였다가 서인들의 논척(論斥)을 받아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되었다가 돌아와서 그때 오가며 듣고 본 일과 머물며 겪었던 일들을 노래한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 北遷歌>, 이웃간의 소송사건으로 유배되어 두 번째 추자도로 귀양가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채귀연(蔡龜淵)의 <채환재적가 蔡宦再謫歌> 등이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다.

전란 중의 피란기록도 지역을 이동하며 새로운 풍물에 접하고 시대적 상황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기행문학에 포함된다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조정(趙靖)은 <임진왜란일기 壬辰倭亂日記>에서 그의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지역에서 피란생활을 하며 체험하고 견문한 것을 일기체로 기술하고 있다. 오희문(吳希文)은 사사로운 일로 장수현(長水縣)에 내려갔다가 왜란을 만나 각지를 전전하며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과 견문, 풍물들을 묶어 <쇄미록 瑣尾錄>으로 엮어내고 있다.

또, <징비록 懲毖錄>의 저자인 유성룡(柳成龍)의 아들 진(袗)은 어릴 적에 가족들과 함께 피란한 기록으로 <임진록 壬辰錄>이라는 작품을 국문으로 남겨놓고 있다. 병자호란 때의 기록으로 작자를 알 수 없는 <심양일기 瀋陽日記>도 전쟁의 참담함과 심양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피로생활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행가사 가운데는 돌림병이 성하여 그 병의 전염을 피하여 여행하며 듣고 본 느낌을 가사로 지은 황전(黃廛)의 <피역가 避疫歌>도 있다.

이러한 기행문학 작품들은 일제치하에서는 간도 ·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는 고난의 여정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산수경을 조국애와 결부하여 많이 작품화하고 있다. 일제치하에서는 독립지사들이나 문인들이 중국 간도지방이나 시베리아 등지로 쫓겨다니면서 유랑생활을 하는 가운데 많은 기행문들이 창작되었다.

정원택(鄭元澤)의 <지산외유일지 志山外遊日誌>는 한일합방에서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까지 북만주 · 시베리아 · 상해 등지를 전전하며 남긴 근 십년간의 압축된 일기체 기행록이며, 김홍일(金弘日)의 <북만오지여행기 北滿奧地旅行記>, 박노철(朴魯哲)의 <장백산(長白山) 줄기를 밟으며>, 이종정(李鍾鼎)의 <만몽답사여행기 滿蒙踏査旅行記> 등은 빼어난 작품들이다.

널리 알려진 문인들의 작품으로도 김기림(金起林)의 <간도기행 間島紀行>, 강경애(姜敬愛)의 <간도를 등지면서>, 이태준(李泰俊)의 <만주기행 滿洲紀行>, 이기영(李箕永)의 <대지(大地)의 아들을 찾아서>, 이광수(李光洙)의 <상해(上海)에서>나 <만주(滿洲)에서>와 같은 작품들이 있다.

한용운(韓龍雲)의 <북대륙(北大陸)의 하룻밤>은 백담사에서 해삼위(海蔘威)에 이르는 여정을 통하여 독립지사로서의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또, 현경준(玄卿駿)의 <서백리아방랑기 西白利亞放浪記>, 함대훈(咸大勳)의 <남북만주편답기 南北滿洲遍踏記>, 임학수(林學洙)의 <북지견문록 北支見聞錄>, 안용순(安容純)의 <북만순려기 北滿巡旅記> 등 수많은 기행록 가운데는 단순한 유람행각과는 다른 민족적 암울과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광막한 대지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들 작품은 1920∼1930년대의 것이 대부분인데, 주로 ≪조선일보≫ · ≪동아일보≫ 등의 신문들과 ≪개벽 開闢≫ · ≪동광 東光≫ · ≪삼천리 三千里≫ · ≪조광 朝光≫ · ≪신동아 新東亞≫ 등의 잡지류에 발표되었다.

또한, 이무렵의 나라 안 기행문들 가운데서도 명작들이 많다.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근참기 白頭山覲參記>는 근대 백두산기행의 대표작으로, 안재홍(安在鴻)의 <백두산등척기 白頭山登陟記>와 쌍벽을 이룬다.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金剛山遊記>, 이은상(李殷相)의 <한라산등척기 漢拏山登陟記>를 비롯하여 최남선의 <심춘순례 尋春巡禮>, 이은상의 <만상답청기 灣上踏靑記> · <강도유기 江都遊記>, 김억(金億)의 <약산동대 藥山東臺>, 문일평(文一平)의 <동해유기 東海遊記>, 이병기(李秉岐)의 <해산유기 海山遊記>, 정지용(鄭芝溶)의 <다도해기 多島海記>, 정인보(鄭寅普)의 <남유기신 南遊寄信> 등도 대표적인 명승기행에 속한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현진건(玄鎭健)이 묘향산 · 구월산 · 마니산의 단군사당을 기행한 <단군성적순례 檀君聖跡巡禮>는 출간의 과정도 어려웠거니와 저자를 포함한 일제하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고난의 자취가 역력하다. 고유섭(高裕燮)의 <송도고적순례 松都古蹟巡禮>, 김동환(金東煥)의 <초하(初夏)의 반월성(半月城)>, 박종화(朴鍾和)의 <남한산성 南漢山城>도 읽어볼 만하다. 또한 한용운의 <명사십리 明沙十里>, 이병기의 <사비성(泗 城)을 찾는 길에>, 김기림의 <주을온천행 朱乙溫泉行>, 문일평(文一平)의 <조선의 명폭(名瀑)>도 기억할 만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 역시 당시에는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그 뒤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근래의 작품들은 일단 국외 · 국내로 나눌 수 있으며, 국내의 경우는 명산 · 명강 · 고도(古都) · 명승지 등으로 분류되며, 역사기행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망국의 슬픔을 안고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기약하며 지은 처절한 심정의 기행가사도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의병 모집을 위하여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지은 신태식(申泰植)의 <강산편답가 江山遍踏歌>, 중국으로 망명하며 지은 이건승(李建昇)의 <서행별곡 西行別曲>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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